백인민족주의자(white nationalist)에 의한 테러 공격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51명, 미국 엘파소에서는 22명이 사망한 테러 공격이 발생했다. 범인들은 2011년 오슬로와 근교에서 무려 77명을 살해한 안데르스 브레이빅과 같은 인물들을 영감으로 삼으며 “대체(replacement)”에 대한 공포를 범행 동기로 밝히곤 했다. 도대체 백인민족주의(white nationalism)란 무엇이고,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What is “White Nationalism”?: Governments have underestimated a growing, and murderous, threat).
백인을 위한, 백인에 의한, 백인 인종국가 건설 추구
다수는 백인우월주의자...인터넷과 함께 빠르게 진화
이 현상은 이념적, 지리적으로 복잡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거칠게 말하자면, 백인민족주의자들은 백인을 위한, 백인에 의한 백인 인종국가 건설을 추구한다. 일부는 다른 인종 역시 그들만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침으로서 타인종을 열등하게 본다는 인식을 감추기 위해 나름 노력한다. 하지만 다수는 백인우월주의자로, 백인이 최상에 위치한 인종의 위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엄격한 이민 제한 정책, 인종 청소, 나아가 학살에 이르는 대책을 요구한다. 이들의 주장은 “백인 학살” 또는 “백인 대체”에 대한 공포와 맞물려 있다. 백인들의 상대적으로 낮은 출산율, 인종 간 출산 등을 통해 백인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로 확산된 현대의 백인민족주의는 남북전쟁 후 미국에서 처음 탄생했다. 노예제도가 끝나면서 각 주들은 서유럽 후손인 백인 프로테스탄트들의 특혜적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짐 크로우 법을 통한 인종분리 정책 등이 이에 해당된다.
유사 군대의 폭력이나 린칭도 이어졌다. 중국인과 아일랜드 가톨릭교도, 유대인들의 이민이 증가하면서 백인 정체성에 대한 집착은 더욱 커졌다. 이민을 제한하기 위한 법이 만들어졌다. 매디슨 그랜트가 1916년에 발간한 “위대한 인종의 소멸(The Passing of the Great Race)”은 이민 배척주의와 우생학을 버무려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자살”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아돌프 히틀러는 그랜트에게 편지를 써 이 책이 자신의 성경과도 같다고 밝혔을 정도다.
나치즘과의 전쟁, 그리고 5-60년대의 민권운동을 거치며 불명예를 떠안게 된 백인민족주의는 20세기 말 부흥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유럽과 미국에서 폭력적인 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88년 데이비드 레인은 “백인 학살 선언(The White Genocide Manifesto)”를 써서 그랜트의 “인종 자살론”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이 글로 전 세계에 백인민족주의의 외침이 잘 알려지게 됐다. 백인민족주의자들이 “14단어(the 14 words)”로 떠받드는 문장(우리 민족의 존속과 백인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백인의 우월성에 대한 핵심적인 믿음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백인민족주의도 다양한 갈래로 나뉜다. 연방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고, 남북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견해를 받아들여 남부군을 미화하는 이들도 있다.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을 떠받드는 이들도 있다.
1978년 윌리엄 루서 피어스가 펴낸 백인민족주의 디스토피아물인 “터너 다이어리(The Turner Diaries)”는 백인 인종을 수호하기 위해 연방 정부에 맞서는 저항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데이비드 레인은 물론 오클라호마 청사 폭발 테러를 일으켜 168명을 살해한 티모시 맥베이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백인민족주의는 인터넷의 탄생과 함께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모니터 반대편의 화자가 진지한지, 농담을 하는지를 알 수 없는 인터넷 시대의 아이러니를 흡수한 것이다. 농담 삼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통해, 백인민족주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한편 유럽의 백인민족주의자들은 무슬림에 의한 유럽 점령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 현상은 9.11 테러와 글로벌 지하드주의의 부상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르노 까뮈는 “거대한 대체(The Great Replacement)”를 통해 진정한 프랑스인이 아프리카와 중동 출신의 이민자들로 대체돼가고 있고 이는 “대체주의적” 엘리트들이 부추긴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백인민족주의자들 역시 이 같은 무슬림 혐오를 일부 차용하기 시작했으나, 아직은 라틴계, 흑인, 유대인을 주요 적대 대상으로 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백인민족주의자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정도가 지나친 비난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의 언어가 우월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7년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에서 일어난 “우파여 단결하라” 시위에 대해 대통령은 “리 장군 동상 철거에 아주 조용하게 항의하는 사람들”이라 칭했다. 횃불을 들고 나치를 자처하며 “유대인은 우리를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는 슬로건을 외치던 사람들에 대해 너무나도 너그러운 평가였다.
2018년은 오클라호마 청사 테러가 있었던 1995년 이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우파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해였다. 범인의 절대 다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었다. 서구 세계의 정부 당국이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는 위협이다.
10/05/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