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을 그리며 (8)

사도 바울을 그리며 (8)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사도바울은 절망스런 풍랑을 통과하고 나폴리 남쪽의 보디올(현, Pozzuoli)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일찍이 로마의 해군사령부가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리고 근처에 위치한 솔파따라는 지금도 지하에서 뜨거운 용암으로 인한 열과 김이 지칠 줄 모르고 분출하는 곳입니다. 또한 이곳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기원전 4세기부터 유대인들이 이주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 중에 오순절의 성령 받은 무리들로 인한 공동체가 형성돼 있었고 그 모임은 로마 다음의 기독교인들의 공동체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도 십여만 이상 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고 거의 완전한 상태인 콜로세움이 보존돼 있습니다.

그곳에 바울이 도착하자 성도들의 마중을 받았고 한 주간을 그들과 함께 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행28;14). 그리고 거기에서 기원전 4세기 초에 만든 아피아 안티카(Appia Antica) 길을 따라 로마를 향해 떠났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만 그 길로 과연 누가 걸어갔느냐는 역사에 중요한 의미로 되새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신 예루살렘의 고난의 길(Via Dolorosa)은 지금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주님의 당하신 고난을 회상하면서 그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쓰러지셨다는 자리들마다 볼 수 있게 표시를 해두었는데, 그 자리들이야말로 나의 죄악을 보게 하는 고통의 자리로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천천히 자신을 수행하는 무리들과 함께 마음으로 늘 소원했던 수도 로마를 향해 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200여km의 거리이기에 며칠 동안 걸어가야 됐습니다. 가는 노정에 여관에서 밤을 지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그 길을 걸어갔을까 상상해봅니다. 삶과 죽음을 초탈한 심정으로 걸어갔을 것입니다. 오로지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은 가장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의 두려움인데 죽기를 각오한 사람은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는 사람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무서울 게 없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이런 담담한 마음으로 로마를 향해 걸어갔을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며칠을 걸려 로마에서 하루거리인 삼관(행28;15)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로마교회에서 마중 나온 성도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생전 처음 방문하는 길에서 자신을 환영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마중 나온 로마교회 교인들을 만났을 때 이런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동행하사 바울을 위로하시려는 섭리였음을 바울은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이고 주님께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 바울로 하여금 쓸쓸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신 것입니다. 로마교회교인들로 하여금 위대한 사도 바울이 가이사 앞에 서기 위해 로마를 향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의 큰 감동을 받아 환영단을 파송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교회의 구성원들은 화려했습니다. 사회 지도층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강 예를 들어 본다면 스다구(롬16;9)는 로마의 황족 중에 있는 이름입니다. 아리스도불로(롬16;10)는 헤롯의 손자 아그립바 1세의 형제관계에 있던 아르시도 불로가 죽자 클라우디오 황제의 집으로 옮긴 사람입니다. 나깃수(롬16;11)의 집 사람들은 네로의 가계로 들어간 사람이요, 후에 클라우디오 황제의 비서가 된 사람입니다. 이런 쟁쟁한 사람들이 로마교회의 구성원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어떤 집단의 객관적 평가는 그 구성원의 사회적 역량을 통해서입니다. 세상은 이런 부분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설교 중에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일화를 예화로 많이 사용하는 것은 그 분이 미국의 영향력 있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일상을 예로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예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로마교회는 제국의 수도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요, 교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적으로도 뛰어난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로마의 시민권자라고 하지만 로마의 순수한 혈통이 아닌 다소 출신 유대인이라는 아웃사이더를 환영했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겨우 백여 년 전에 백정 박성춘이 세례를 받자(승동교회) 양반과 쌍놈이 함께 예배드릴 수 없다고 무어 선교사를 윽박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양반이나 천민을 나누지 않으셨고 평등하게 지으셨다고 하자, 양반들은 한꺼번에 우르르 나가서 자기들만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윤보선 대통령께서 다니셨던 안동교회입니다.

로마 교인들이 이처럼 바울을 환영하기 위해 먼 길까지 마중을 나온 것은 바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여행자들이 전해주는 바울에 대한 수많은 얘기들, 그리고 로마서를 통한 바울의 해박한 영적 지식의 탁월함 때문에 바울을 존경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들이 바울 보기를 열망했고, 그 간절함이 50여km를 마중 나가게 만든 원인이 됐던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내가 가지지 못한 그 무엇을 가진 사람을 경외하도록 돼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놀라운 기사와 이적들, 이런 얘기들은 충분히 바울에 대한 흥미가 높았을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요즈음도 어떤 집회에 이적이 일어난다고 할 때, 동서양 사람을 막론하고 구름떼처럼 모이는 현상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로마 교인들은 하룻길 이상 되는 먼 길을 마중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 로마 교인들이었는데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