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상담

방혜법 선교사 통해 정식 연보운동의 방향과 전략 체계화

이정현 목사 빛과 소금교회 / (310)326-9092 E-Mail: LSPC0316@yahoo.co.kr

Q: 초기 한국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에 성경적 십일조 제도를 가르쳐 교인들이 드리는 십일조로 한국 교회의 자립과 발전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데 이것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얼바인에서 이 목사

A: 한국 기독교회의 선교역사와 성장사를 통해 볼 때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십일조 제도를 정착시켜 시행해왔습니다. 한국교회는 십일조 제도를 통해 재정적 자립을 이루어왔고 이러한 재정적 자립은 한국교회 성장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총신대 총장이었던 김인환 목사가 쓴 “십일조 생활을 하여야 하는가?”란 책을 보면 서문에 잘 소개돼 있습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시작한 선교사들은 처음부터 한국교회를 재정 자립교회로 만들어가는데 선교의 성패를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선교사례들은 한결같이 피선교지의 교회가 재정자립을 이루지 못했을 때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지 않고 전도의 열기가 계속 뜨겁게 이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네비우스라는 선교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이 네비우스 선교전략은 소위 삼자(三自)방법입니다. 즉 재정자립(self-support), 자립전도( self-propaganda), 자립행정(self-government)입니다. 즉 한국교회 교인들이 스스로 전도하며 한국 교역자들에 의해 교회를 치리하고 교회를 운영하도록 하자는 정책이었습니다. 이중에서 자립재정이 그 중심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은 근면하고 비록 가난했으나 남에게 불필요한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자립정신과 물질에 청렴결백한 정신이 서로 상합작용을 일으켜 재정자립정책이 순조롭게 뿌리 내리게 됐습니다.

이러한 재정자립정책을 실질적으로 정착시키게 해준 주요전략은 1929년 당시 조선장로교가 제18차 총회에서 채택한 정식 연보운동이었습니다. 당시의 교인들은 매우 불규칙적으로 교회에 헌금했습니다. 교인들은 일 년에 한번, 혹은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한 달에 한번, 6개월에 한번 혹은 무시로 일정한 기간을 정함이 없이 헌금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 정기적이고 불규칙적인 헌금으로는 도저히 교회가 재정자립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교회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이 깊이 깨닫고 이를 위해 소위 정식연보운동을 하기로 총회가 결정한 것입니다.

방혜법 선교사(Herbert Blair)는 북장로교에서 파송한 선교사인데 그는 ‘한국의 청지기 운동’(Stewardship in Korea)이라는 책자와 ‘바울, 기독교재정가’(Paul a christian Financer)라는 책자를 출판하면서 정식 연보운동의 방향과 그 전략을 체계화했습니다. 그가 강조한 정식 연보운동은 다름 아닌 십일조 바치기 운동이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바른 구약의 십일조를 근간으로 해 기독교 십일조(A Christian Tithe)를 제정해 그가 세운 모든 교회로 하여금 매주 정규적으로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모세가 세운 십일조는 율법적인 십일조이었기 때문에 소득의 정확한 십일조만을 요구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해 세운 십일조는 결코 율법적인 십일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성도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교회에 재정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주장한 십일조란 소득의 최소 십일조 혹은 그 이상(a Tithe or more)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교인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헌금을 이러한 십일조로 통합해 매주일 하나님께 정기적으로 규칙적으로 바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방혜법 선교사는 바울이 이방인들을 위해 활발한 선교를 하고 교회를 세웠으며 사도로서 권위를 가지고 그 교회운영을 위한 재정정책으로 기독교 십일조를 재정해 모든 신약교회들이 실시하도록 했으므로 오늘날 모든 성도들도 사도바울의 기독교 십일조를 지켜야 항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십일조 신학이 정립됐고 또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쳐야한다는 정신이 확립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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