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잘렸을 때...

잘렸다. 어느 날 갑자기. 섬기던 교회에서. 월급도 없었는데. 많이 섭섭했다. 앞이 캄캄했다. 내년에 그만 둔다고 했는데... 미리 자르다니. 무시당한 기분. 화가 났다. 오기를 부릴까? 나가지 말고 버틸까? 그럴 수도 없지. 이제 어떡하나? 그래도 크게 맘먹자. 심호흡을 했다. 조금 편안해졌다. 여유가 생겼다. 여기에도 뜻이 있겠지? 신학교 졸업반이라 미리 잘랐나?... 독립하라고? 많이 생각했다. 맘을 고쳐먹었다. 긍정으로 바꿨다. 평안해졌다. 

매임으로부터 자유! 참 좋다. 그래도 주일이 돌아오면 허전하다. 아니... 부담스럽다. 딱히 나갈 교회가 없었다. 소속으로부터의 버려짐. 출근시간에 일터가 없다. 실직의 아픔이다. 소외감이 엄습한다. 그래도 주일예배는 드려야 했다. 훌훌 털었다. 생각을 바꿨다. 눈을 들었다. 이게 웬일인가? 오라는 교회는 없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교회들은 줄을 서있었다. 

그때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살았다. 강남의 유명 교회들이 지척에 있었다.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교회들을 탐방했다. 주일 하루에 여섯 교회를 갔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지칠 줄 몰랐다. 압구정동 상가 건물의 소망교회. 배 밭에 건축한 광림교회. 역삼동 높은 언덕 충현교회. 논현동 빨간 벽돌집 영동교회. 도곡동 할렐루야교회. 신반포 남서울교회. 대치동 은마 아파트 곁 지하실의 믿음의 집. 강남의 저명한 교회들을 샅샅이 섭렵했다. 모두가 새로웠다. 교회마다 냄새가 달랐다. 은혜도 분위기도 다양했다. 유명 인사들이 많은 교회. 거룩한 예전에 치중하는 교회. 찬양대가 돋보이는 교회. 아멘 소리가 한마디도 없는 교회. 뜨겁게 할렐루야를 외치는 교회. 신비를 추구하는 교회. 얼음처럼 차가운 교회. 가지각색을 맛보았다. 

비전도 은사도 다양했다. 설교자들마다 특성이 있었다. 교양적인 설교. 예화 중심의 설교. 본문을 쪼개는 설교. 지성에 호소하는 설교. 철학적인 설교. 감성 깊은 설교. 위엄에 찬 설교. 카리스마틱한 설교. 꼼꼼하게 챙겼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았다. 일일이 메모했다. 실천목회 현장수업이었다. 일년을 이렇게 보냈다. 옹골찬 훈련이었다. 방출된 기회가 준 나만의 특권이었다. 잘리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불가능했다. 잘렸기에 찾아온 기회였다. 그때가 오늘의 나를 빚었다. 목회관, 교회관, 설교관, 리더십과 비전, 목회의 전부를 확립했다. 

누구나 한두 번은 잘린다. 세상이 만만치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소리도 없이 잘린다. 직장에서. 친구들에게서도. 심지어 반려자로부터도 잘린다. 이것이 차가운 세상이다. 왜 나만 잘렸나? 미워하지 말라. 낙심치 말라. 주저앉지 말라. 전화위복의 기회로 바꾸라. 오히려 자유하라. 그동안 못해본 일을 시작하라. 해보고 싶은 일에 날개를 달라. 그리고 힘차게 날개 짓을 하라. 높이 오르라. 높이 나는 새가 먹이를 찾는다. 

잘림의 축복을 만들라. 잘림의 특권을 누리라. 롤링은 남편에게 잘리고. 학교에서도 잘렸다. 롤링은 잘린 시간에 해리포터를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다. 40년 전에 나를 잘라주셨던 은사님께 감사한다. 

jykim47@gmail.com

11.0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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