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축구공에 눈이 맞아 실명하고 그 일로 어머니가 충격을 받아 뇌일혈로 세상을 뜨자 고아 된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져 수년간 방황했던 강영우 씨는 어느 목사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믿고 ‘갖지 못한 한 가지를 불평하기보다 가진 10가지를 감사하자’는 그 말씀을 붙들고 미국으로 와서 갖은 고생 끝에 1976년 4월 25일 피츠버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오뚝이 인생처럼 쓰러질 때마다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미국대통령 직속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강영우 박사의 큰아들 진석 씨는 하버드대학을 나와 듀크대학 병원에 근무하며 산부인과의사인 아내를 맞았고 작은아들 진영 씨는 변호사로, 아내 역시 하버드법대를 졸업한 변호사입니다.
강영우 박사의 부인 석은옥 씨는 미국교육 인명사전, 미국여성명사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는 명사가 되었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 이 땅에서의 모든 사명을 마치고 2012년 2월 24일 천국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절망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승리한 분들 중에는 시각장애인으로 3개의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의 헬렌 켈러 김선태 목사님도 계십니다. 그는 어린 시절 깡통을 들고 전국을 돌며 거지생활을 했습니다. 친척에게 모진 학대를 당하고 매를 맞아 머리와 몸에는 상처의 흔적들이 자자히 남았습니다. 거지생활 할 때 다리에 동상이 걸리고 식중독으로 죽을 고비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두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은혜를 한평생 감사했습니다.
그 고난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일어나 맹학교에서 점자교육을 받고 숭실중고등학교와 숭실대학 그리고 장로회신학대학을 나와 시카고 맥코믹신학교에서 박사학위, 모교인 숭실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 장로회신학대학서 명예신학박사학위, 3개의 박사학위를 소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천 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자신의 월급을 털어 장학금을 준 숨은 봉사자로, 실로암안과병원 원장으로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의 눈을 열어준 공로가 인정되어 아시아의 노벨상이란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깡통을 들고 전국을 헤메던 거지소년은 신학교 다닐 때 너무 배가 고파 한 끼에 13원하는 식사 값이 없어 뒷산에 올라가 소나무의 새싹을 잘라 먹던 배고픈 시각장애인을 하나님은 한국교계에 우뚝 세워 믿음의 승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의 인생은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선태 목사님께서 제일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이었습니다.
어떤 절망스런 환경과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부활의 예수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 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높이 들어 존귀케 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작년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이 1년 8개월이 넘게 장기화 되면서 이젠 변이 바이러스의 창궐로 모두들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예수 사랑의 능력과 예수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주위에 고통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며 기쁨과 생명의 역사를 날마다 창조해 나가는 소망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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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