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국가를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즉 힘 있는 나라와 힘없는 사람이다. 이런 부류는 인류 역사와 함께 공존했고 앞으로도 항상 공존할 것이다. 그런데 힘의 역사는 유동성이 많고 또 끊임없이 변하는 특성이 있다. 역사적으로 강력하게 시작했다가 사라져버린 국가나 개인들은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재벌의 자녀로 태어나 큰 노력 없이 힘 있는 자의 부류가 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재력은 덜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아 출중함을 통해 요직을 거머쥐기도 하고 권력의 일부를 차지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자를 힘 있는 자로 세우시고 섭리하신다. 왜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힘 있는 자들을 세우시고 섭리하실까? 바울은 그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답하고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약한 자를 도우라는 의미라고.... 고로 이 땅의 힘 있다고 여기는 모든 사람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힘은 무한정 누리도록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제1 삼두정치의 한 사람, 크랏수스는 고대 로마제국에서 엄청난 부자이었는데, 포브스의 발표에 의하면 현재(2016년) 가치로 202조에 달했다고 한다. 심지어 로마에서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저도 그에게 많은 돈을 빌려야 했는데, 그 많은 돈을 크랏수스는 과연 어떻게 사용했을까?

그 많은 돈은 그의 죽음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즉 세상의 힘은 살아있을 때만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의미다. 죽으면 그 놀라운 힘은 한 순간에 무력하게 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 세상 힘의 실상이다. 그런데 죽어서도 남는 게 있다면 생전에 주어진 힘으로 연약한 자를 도와준 부분이다. 이것이야말로 힘을 부여해주신 주님의 변함없는 가르침이다. 

힘 있는 개인이나 국가는 반드시 그 힘을 자신의 교만이나 자랑의 요소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힘을 주신 이유는 연약한 이웃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소명이 있음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도울 수 있는 대상을 찾아 돕는 일에 힘써야 한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한다고 말이다.

현재 코로나로 인해 부익부 빈익빈의 상태는 더욱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몇 달 전 이태리 신문에 의하면 미국의 세계적인 부자들은 막대한 돈을 자선단체나 특정한 곳에 기부하지만 그 이상의 큰돈을 지속적으로 벌어들인다고 한다.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부가 몇몇 사람들에게 치중한다. 이제 그만 벌어도 될 부자들에게 돈은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들지만 막상 가난한 자들에게는 돈이 들어오기는커녕 있는 작은 돈까지 계속 새어나가고 있다. 구멍 뚫린 바가지의 담긴 물이 새는 것처럼.... 그래서 절대 빈곤의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검증된 가장 나은 정치제도가 민주주의 제도인데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를 표방함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되었고 그 폐해는 상상할 수 없이 커지고 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가 정치가들에게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그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께서 부의 편중을 막기 위하 세우신 제도가 있다. 즉 50년마다 빚을 탕감해주고 원 주인에게 땅을 돌려주는 제도다. 경제를 설계하는 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도모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희망이 없게 된다. 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축복이지만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은 더 큰 축복이다. 탐욕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세상은 좋아지게 될 것이다.

chiesadiroma@daum.net

07.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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