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무상지원, 파독 광부 간호원, 베트남전 파병, 기업육성 등으로 경제발전

Q: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후진국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선 것은 두 대통령의 공로가 큰 것 같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한미동맹은 이승만 대통령이 확고히 세운 것이라면 경제는 박정희 대통령의 공이 큽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경제를 발전시킨 것인가요?

- 하버에서 이희은

 

A: 5.16 이후에 박정희 정부는 경제를 앞세워 놀라운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통계를 보면 박정희 집권기간인 1965년에서 1980년 사이 한국은 연평균 9.9%의 성장을 기록해 국민총생산은 27배, 1인당 소득은 19배, 수출은 275배 늘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통계는 1962년 87달러이던 1인당 소득이 1979년에는 1,674달러로, 5500만 달러이던 수출은 150억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국민소득은 이제 3만 달러시대로 접근했고 수출입은 1조 달러를 넘었습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3차례에 걸쳐 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마무리했고(1962-1976) 마지막 4차 경제 및 사회발전 5개년 계획(1977-81)도중 변을 당했습니다(문창극의 역사읽기, 284-295).  

박정희는 1)자급경제가 아니라 수출경제모델을 세웠습니다. 무슨 산업을 하던 종자돈이 있어야 공장을 세울 수 있는데 그 돈이 없었습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박정희가 요구하는 차관을 거절했습니다. 2)박정희는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했습니다. 한일협정으로 무상 3억 달러, 유상 공공차관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를 받아냈습니다. 이 한일협정은 야당이나 학생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협정이라고 반대했으나 박정희는 3)이 돈 가운데 2억5천 달러로 포항제철을 세웠습니다. 강철의 기반 없이는 기계, 자동차 등 중공업으로 나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경부고속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도 없는데 고속도로를 만들면 누가 이를 이용할 것인가? 야당과 지식인들의 주장이었으나 박정희는 포항제철을 통해 중공업을 발전시켰습니다. 4)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하면 돈을 주겠다고 해서 간호사 광부 2만명을 파견하여 월 100달러를 받고 일했고 달러는 귀중한 외화벌이였습니다.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미국이 한국에 주둔중인 미군을 빼내 베트남으로 보내려하자 북한의 위협을 걱정한 박정희는 베트남 파병을 결심했고 파병과 함께 국군의 현대화와 건설수출을 보장받았습니다. 1966년에서 1969년사이의 외화수입은 베트남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베트남 특수는 곧 중동건설 특수로 이어졌습니다. 1977-79년 사이에 사우디 등지에서 205억의 건설수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5)기업을 키웠습니다. 개인은 투자할 돈이 없으니 국가가 국민들이 예금한 돈을 모아 기업을 잘할 수 있도록 몰아준 것입니다. 국가의 그러한 혜택으로 재벌기업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라를 고맙게 여겼고 늘 애국을 생각했습니다. 박정희 주변에는 정주영, 이병철, 김우중, 박태준같은 경제의 인물들이 있었고 그들은 또한 애국자였습니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배웠고 자본을 빌렸으며 일본발전궤적을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일본으로부터 기술이전이 51%, 미국은 28%였습니다. 제철과 전자, 모든 부분은 일본으로부터 배웠습니다. 배운 것도 있고 몰래 빼온 것도 있었습니다. 중국은 우리가 발전하는 사이에 문화 혁명으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후에 마오쩌둥이 죽고 등사오핑이 집권하면서 한국모델 즉 박정희 개발모델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결국 한국경제를 기반으로 세계선교에 크게 쓰임받게 하였습니다. 한국은 하나님께 큰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03.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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