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세례 요한 앞에 설 수 있을까?

어떤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세례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었습니다” 라며 가르쳤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와우, 그는 매우 비싸고 좋은 옷을 입었군요. 그는 부자였는가 봐요?”라고 반문했다. 다시 그 선생님은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으며 살았답니다”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와우, 그는 몸에 좋은 자연식품만 먹었군요. 그는 건강식품 애호가인가 봅니다” 라고 말했다. 

약대 털옷은 죽은 약대로부터 얻은 전혀 가공되지 않은 냄새나고 살육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친 가죽을 말한다. 메뚜기와 야생 꿀은 사람이 재배하거나 가공한 음식이 아니라, 생명유지를 위해서 자연 속에서 겨우 채취한 것을 말한다. 세례 요한은 그렇게 기인의 모습으로 살았다. 

그런데, 그 세례 요한은 태어날 때에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제사장은 유대사회의 귀족층인데, 세례 요한은 제사장 스가랴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이 만약 집안의 전통을 따르는 일반적인 길을 걸었다면 그는 집안의 혈통대로 자연스럽게 제사장이 되었을 것이고, 심지어 대제사장도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 편하고 명예가 약속된 길을 걸어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삶도 버리고 광야에서 홀로 살았다. 그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꿈꾸는 출세, 명예, 편안함 등 그 모든 것을 초월하였다. 게다가 그는 그 당시 특권층들을 향해서 조금도 다듬지 않은 돌직구들을 맹렬히 날리며 무섭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는 그 지역의 최고의 권력가인 헤롯 왕의 부도덕을 지적하다가 결국 처형당하여 죽고 말았다. 왜 세례 요한은 그런 기인의 모습으로 살았고 급진적인 언행들을 쏟아내었을까? 그것은 세례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때문이라고 밖에 말할 것이 없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오심을 예비하기 위해서 기존의 길과 틀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했다. 그 시대의 기득권층이 탄탄하게 닦고 쌓아올렸던 만연된 죄악, 부도덕, 율법주의 그리고 유대주의의 유전과 전통들을 철저히 깨어 부셔야했다. 탐욕과 위선으로 다진 특권층의 굳건한 틀을 깨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충격을 가해야 할까? 정제되고 우회적인 말들로서 탐욕과 위선이 보편화된 그 시대를 향하여 작은 흠집조차도 하나 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최고치 레벨의 단어들로서 그들의 죄악을 신랄하게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였던 것이다.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했고, 가족의 생계나 안전이 염려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솔로가 되어서 조금도 자신의 안전과 평안을 도모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권력층의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광야에 가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세례 요한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그는 외롭지 않았을까? 그도 감각과 신경을 가진 사람인데 닥쳐올 권력자들의 폭력이 두렵지 않았을까? 그는 조금도 그런 표시를 내지 않는다. 전혀 그런 감정을 읽을 수 없다. 자신의 삶과 사역을 힘들어 하지도 않는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의 별명은 엘리야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오리지널 엘리야는 훨씬 인간적이지 않았던가? 엘리야는 무리한 사역으로 인한 탈진과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광야로 도망가서 죽고 싶다고 한탄했다. 우리는 엘리야의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보면서 오히려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엘리야의 탄식을 통해서 나의 한숨이 정당화될 수 있었고, 엘리야의 절망을 통해서 나의 절망감이 희석될 수 있었다. 그래 엘리야도 그랬는데 하물며 나는…. 그래서 한없이 무너지고 깨어진 나의 마음을 주님께서 회복시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아무런 티를 내지 않는다. 그도 사람일 것인데… 

오늘날 세례 요한이 설교를 한다면 누가 그의 설교 앞에 설 수 있을까? 그의 목회사역의 열매는 어떨까 상상해본다. 그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는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생각해 본다. 나는 세례 요한처럼 살거나 목회할 자신은 없다.  

주님께서 그런 나를 불쌍히 여겨서 세례 요한의 사명을 나에게 주지 않음을 감사드려 본다. 주님께서는 나 홀로 광야에서 거하지 않게 하시고, 성도들을 보내주시고, 아내와 자녀를 주시고, 동역자와 친구들을 주시고, 사역의 대가도 주시고, 따뜻한 집을 주시고, 취미생활을 하며 휴가도 갖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그래서 힘내어서 더욱 열심히 사역하라고 나 자신에게 채찍질 해본다. 하지만, 그것이 나 스스로를 위한 합리화가 아니기를 경계해본다. 

나는 오늘도 나의 말과 메시지를 순화시키고 정제시키기를 연습한다. 그래서 나의 입술이 상하고 지친 영혼들을 치유하고 용기를 주는 입술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드린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삶을 묵상하면서 아무 권력욕이나 명예욕이나 탐욕 없이 살다간 세례 요한의 마음을 내가 조금 이라도 더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드려 본다.

dik0184yahoo.com

03.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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