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았다는 그 자체가 감격스럽고 감사할 뿐

Q: 지난주일 담임목사님의 설교에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대해 들었는데 그 예로 야곱은 선택하고 에서는 선택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에서가 볼 때 하나님은 매우 불공평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 장로교의 선택사상이 과연 옳은 것인가요?

- 팔로스 버디스에서 Kim

 

A: 귀한 질문입니다. 선택교리는 장로교 칼빈주의의 5대 교리 중에 나옵니다. 1)Total Depravity(전적 타락, 전적 무능력) 2)Unconditional Election(무조건적인 선택) 3)Limited Atonement(제한 속죄) 4)irresistible Grace(불가항력적 은혜) 5)Perseverance of the Saints(성도의 견인)입니다. 무조건적인 선택교리는 장로교 신학의 핵심입니다. 이삭의 맏아들인 에서는 아버지의 장자로 태어나 장자권의 축복을 받으려고 발버둥치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서보다 그 동생 야곱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야곱이 인간적으로 볼 때 형 에서 보다 남성적이지 못하고 좀 부족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결국은 장자권의 축복을 받고 구원을 얻고 거룩한 족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선택적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선택적 은혜를 로마서 9장 13절에는 바울이 한마디로 표현하기를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선택교리는 인간의 이성을 당혹하게 만듭니다.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받는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결정되었다는 말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매우 불공평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야곱이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는 것까지는 좋으나 에서를 버리신 하나님은 그렇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9장 14절에서 바울이 질문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 인간은 타락하여 죄의 자리에 떨어졌을 때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하여도 할 말이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구원받을 만한 어떤 자격이나 권리가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누구는 버리시고 누구를 구원하셨다고 하면 불평도하고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는 하등의 구원 얻을 만한 자격이나 권리가 없다면 누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몇 가지 들어봅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가지고 백화점에 가서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산다고 합시다. 그가 자기 돈으로 자기가 마음에 드는 어느 구두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구두를 사지 않았다고 다른 구두들이 불평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홍수가 나서 수십 명이 물에 빠졌는데 구조대원이 그 가운데 3명을 살렸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이 그 구조대원에게 왜 다 구원하여주지 우리 몇 사람만 구원하여주었다고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저 thank you 하고 또 감사할 일밖에 없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여 주었는데 공평하다 불공평하다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로마서 6장 23절 말씀대로 그대로 놔두면 죄악의 강물에 빠져 자동적으로 죽을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몇몇을 택하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그자체가 감격스러운 일이요 감사할 일입니다.

03.0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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