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한편에 옛 길을 발굴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볼 수 있도록 했다. 마차가 서로 비켜가기는 힘든 너비로 비아아피아보다는 좁지만 더 오래된 길이다. 안내판에는 로마이전에 거주했던 에트루스 족(BC 8세기)들이 사용했던 길인데 BC 380년경에 만들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로 존재했었는데 공화정시대에 비아아피아처럼 돌을 깔아 튼튼한 길로 확장했을 것이다.   

깔아놓은 돌에는 마차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깊이 파여 있다. 돌이 깊이 파일 이 정도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마차들이 이 길을 따라 오갔을까 싶다. 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깊이 파인 자국들만 길에 남아있다. 그 길은 오롯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길은 무엇일까? 왜 길은 이처럼 생겨나는 것일까? 다양한 취미와 기호를 가진 인생들이 눈에 좋은 대로 터를 잡기 위해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닌다. 어떤 자연인은 그 깊은 산 계곡에 자리 잡기 위해 십여 년 이상을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처럼 사람이 자신의 둥지를 만든다는 어려운 일이다 싶다. 나 역시 그중 한사람일 테고....  

충청도의 시골에서 태어나 서울로 갔고 서울에서 또 낯선 곳 로마로 왔고 이곳에서 40여 년간을 살면서 길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나의 친구는 시골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남미로 남미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다시 서울로 들어갔으니 거주에 대한 것은 순전히 내 뜻만으로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그것이 그가 만드는 삶의 길인지도 모른다.

오래 전에 나폴리에 있는 나토 기지에 근무하는 국제 결혼한 가정이 모이는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이십여 년 가까이를 다녔다. 그들의 간증에 의하면 조국에 살면서 비행기가 머리 위를 지나갈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했다고 한다. 나는 언젠가는 저 비행기를 타고 조국을 떠난다고, 그랬더니 때가 되니 미국을 가게 되고 또 이곳 나폴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나폴리의 삶은 그들이 만들어가는 하나의 길일 것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길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길도 존재할 것이다. 삶의 방법도 길일 수 있고,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나름대로의 길이다. 어떤 사람은 평생을 탁자보다도 작은 바둑판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그 위험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기 위해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올랐던 길이 아니라 한 번도 오르지 않았던 길을 개척하려고 말이다. 그것은 목숨을 버릴 각오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길이다.

길을 내려는 사람들, 그들의 노력과 열정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다. 때로는 그 길에서 동료가 죽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인간들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정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바닥에 깔려 있는 돌들은 수많은 사람들과 마차들이 다녔는지 닳았고 윤기가 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다녔을까? 아마도 온갖 사연들이 길에는 담겨 있을 것이다. 기록이 지워진 핸드폰을 포렌식으로 다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기술력이 발달되어 저 닳아진 길을 포렌식으로 찾아낼 수 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역사가 새롭게 밝혀질지도 모른다.      

인생은 누구나 살아간 만큼 길을 만들게 된다. 오히려 길을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길은 아주 작은 부분만 알려지고 대부분은 개인적인 기억에 저장된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부분들, 죄스러운 편린들은 모두 내 속에 꼭꼭 숨겨둔다. 그 누가 나의 길은 이렇다, 그러니 나의 길을 따라오라, 말할 수 있을까? 길지 않은 인생길인데 남은 여정만큼은 자랑스러운 자국을 만들어야겠다 싶다. 

돌을 깊은 자국을 만든 마차, 아마도 마차 주인은 바퀴를 더욱 강한 쇠로 덧씌웠는지 모른다. 그 강한 바퀴가 누워있는 돌 판위를 사정없이 지나칠 때마다 깔린 돌은 비명을 질러야 했고, 그 비명들이 저 깊은 상처를 내게 되었다.

길, 나의 길이야말로 그 누구에게 상처를 만들 수 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이왕 내는 길이라면 아름다운 길을 만들고 싶다. 

chiesadiroma@daum.net

02.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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