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錯覺)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에는 매우 큰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이는 자기의식이 특별한 이들이 자주 저지를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하다거나 그렇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자각이 클수록 자주 범할 수 있는 것이 착각이다. 착각은 사실을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으로 해석함으로 생기는 자가당착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이 시대에 주목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보이는 착각은 그 끝이 어딜 지 모를 만큼 위험천만하다. 열혈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그의 과도한 도박이 몰고 올 파장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임기를 일주일 정도 남겨둔 상태에서 빚어지는 정치권의 탄핵이라는 차꼬에는 이미 걸리고 말았다. 뭐하는 짓이냐는 핀잔이나 몰매로 끝날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 그의 불행이며 이는 그의 착각에 따른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도 거의 예외가 없다. 본인 아니면 자식들로 인해 보통사람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설마라는 방심이 권력의 방패로도 막지 못한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당금의 정부도 그런 전철을 밟는 듯 한 행보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촛불민심을 힘입어 창출한 정권이되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민심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왜? 권력을 잡으면 삼척동자라도 알만한 것들조차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와 문화 등 전반에서 친북 일변도로 치닫는 통에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40% 지지율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을 맞이한 대통령의 신년사에서도 북을 향한 구애는 예외가 아니었다. 끊임없는 구애(求愛)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북을 향해 일편단심의 애가(愛歌)를 거듭하고 있다. 이제는 애가(愛歌)가 아니라 차라리 애가(哀歌)라 느껴질 정도다. 

권력자들의 착각은 그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그 결과들에 대한 엄청난 영향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이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근근이 오늘을 살아내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갔다. 이제는 마스크를 벗고 싶다는 열망은 코로나가 물러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지만 전문가들은 마스크를 쉽게 벗지 못할 것이라고 어둡게 전망한다. 미세먼지라는 환경오염이 일상화되면서부터 마지못해 쓰기 시작한 마스크지만 이것에 익숙하기가 참 어렵다. 안 쓸 수 없어 쓰기는 쓰되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마스크는 계륵과 같다.

서양에서는 마스크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하다고 한다. 특수 업종을 제외하면 자기를 감추고 싶은 범죄자만이 쓴다는 인식으로 코로나19 초기에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마스크를 거의 쓰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의 뭇매에도 마스크를 거부하다 확진이 되었고 미국 내 감염자가 늘어나고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의술과 의학이 뛰어난데 그깟 마스크 정도야 하는 착각과 오해가 전 세계 감염확산의 단초가 되었을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착각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입되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이단이 되고 파멸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지난 1월 3일 일요일 미(美) 제117차 하원 개회기도에서 사상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연합감리교회 목사이며 진보적 하원의원인 엠마누엘 클리버(Emanuel Cleaver, 민주당 미주리 제5선거구)는 개회기도를 맡았다. 클리버는 하나님의 “성스러운 주권”을 인정하는 기독교 언어로 기도를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관용 없이는 우리의 잘못된 본성에 의하여 위험한 새해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 민수기 6장 24절-26절을 인용하여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지켜주시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비추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내려주시옵소서.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원합니다. 주님, 바라옵기는 지금 이곳에도 당신의 평화가 임하길 기도합니다”고 기도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의 끝맺음이었다. 그는 “우리의 유일신 하나님, 브라마, 그리고 여러 다른 것들과 많은 이름으로 알려진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고 아우멘(We ask it in the name of the monotheistic God, Brahma, and God known by many names by many different things. Amen and A-woman)”이라고 기도를 마쳤다. 수많은 신들의 이름으로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아멘 엔드 아우먼(Amen and A-woman)”이라는 기독교적인 단어와 성(性), 즉 성별(性別)에 대한 용어를 나란히 사용하여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클리버의 기도가 착각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의도된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착각과 무지는 이 땅과 그 자신들을 지옥으로 만들 것이다. 이것만큼은 절대 착각이 아니다. 착각은 자유가 아니라 파멸이며 불행이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임을 잊지 말자. 

 

hanmackim@hanmail.net    

0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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