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교우님의 어머님이 연로하여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 교우님의 어머님은 99세였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 교우님은 나에게 부탁하기를 자신의 집을 방문하여서 자신의 어머님께 복음을 전해 달라고 하셨다. 그 어머님의 얼굴에는 긴 세월과 온갖 풍상을 헤쳐 나온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 어머님은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예감하시는 것 같았다. 그 어머님은 죽기 싫다며 죽음을 두려워하고 계셨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지만 그 어머님께서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성도들도 허물 많은 사람인지라 세상에 살 때에 인격과 생활에 있어서 비신자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성도들도 죽을 때는 비신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을 보았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어떤 성도는 소망에 찬 모습으로 참으로 담대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았다.
이전 교회에서 알던 권사님은 연로하셔서 죽음이 가까웠다. 온 가족들은 임종을 지키기 위해서 권사님의 침대 주위로 모여 들었다. 권사님은 가쁜 숨을 내쉬며 “모두 천국에서 만나자”며 가족들을 향해 말씀하신 후 눈을 감았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다시 눈을 뜨시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아니, 아직 천국이 아니잖아, 다시… 천국에서 만나자”라고 말씀하신 후 돌아가셨다. 그 권사님은 참으로 유쾌하고 담대하게 주님의 품에 안기셨다. 사람이 일생을 살다가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죽음 이후에 무슨 일이 있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면 얼마나 암담하고 두려울까?
이번에 사랑하는 저희 어머니 고 고복심 권사님께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나의 어머니는 1927년에 태어나셔서 이 세상에서 93년의 생을 사셨다.
나의 어머니는 한국의 옛 어머니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많이 배우지는 못하셨다. 하지만 참으로 지혜롭고, 정갈하시고, 조신하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고우시다는 말씀을 들었다. 내가 어릴 때에 내가 어떤 난제로 어머니께 물어보면 어머니는 지혜의 말들로 나의 눈을 뜨게 해 주셨으며, 집안의 물건들을 찾지 못해서 여쭤보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찾아주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나이 사십 세가 넘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새댁이라고 부른다고 마음 언짢아 하시기도 하였는데, 그토록 긴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주님 품에 안기셨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보면 이 세상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야속하고 허망하게 여겨진다.
어머니는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일생을 기도의 용사로 사셨다. 외조모님과 어머니가 같이 손을 잡고 몇 시간씩 기도하시던 모습, 새벽기도의 삼매경에 빠져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잊고 황망해 하시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는 왜 어머니처럼 기도하지 못할까 라며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흠모하였고, 우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께 기도를 부탁드렸고, 어머니의 기도에 많이 의지했다. 특히 제가 이만큼 목회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기도 덕분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는 무서운 시집살이로 인하여 사십대 젊은 나이 때부터 심장병을 앓으셨다. 의사 선생님은 어머니의 심장이 너무 약해서 맥이 잡히지 않는다면서 이런 심장으로 살아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셨다. 그 동안에도 어머니는 죽을 고비를 크게 세 번 넘기셨다. 어머니는 물도 삼키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서 죽음의 그림자가 얼굴 위에 진하게 내려앉았을 때 마지막으로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시겠다고 기도원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살아나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주절주절 늘어놓는 인생사를 들을 때는 가슴 조리며 듣기도 하였고 같이 울기도 하였다. 어머니의 일생을 책으로 출판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서는 어머니의 일생은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분들의 이야기인 것을 깨닫고 책으로 출판하지는 못했다.
나의 아버지는 50대 초반에 돌아가시면서 “당신은 몸이 약하니 15년만 더 살고 오라”고 어머니께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담대하게 그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시고 43년을 더 사셨다. 어머니의 몸은 깨어지기 쉬운 도자기처럼 위태했지만 주님 앞에 가는 그 순간까지 정신이 맑았고 몸에 심각한 질병도 없으셨다. 어머니께서는 살아생전에 절대적으로 주님을 의지했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성도들과 자녀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에 대한 믿음과 주님을 만날 소망으로 가득하셨고 마침내 담대하고 소망에 찬 모습으로 주님의 품에 안기셨다. 그런 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앞서간 믿음의 용사의 기운을 느끼기도 하였다. 성도들은 자신이 죽은 후에 갈 곳이 어디인지를 알고 죽음이 주는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니 죽음 앞에서 담대하고 소망이 넘친다.
작년에 나는 어머님께 남기고 싶은 유언이 무엇이냐고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 잘 믿고 천국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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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