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도시로 가고 있다. 중국의 우한, 한국의 대구, 미국의 뉴욕 등의 도시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여서 수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죽어나가는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그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 감염지역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그 죽음의 도시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 도시로 들어간 의료관계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런데 2000여년전에 죽음의 도시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죽기 위해서 스스로 사지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종려주일을 승리의 입성이라고 말한다. 왜 그 날을 승리의 입성으로 부르게 되었을까? 누가 그 날을 승리의 입성이라고 말하게 되었을까? 그 말은 예루살렘 성에 모여 든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이스라엘의 왕이여” 라고 부르며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던 그 분위기 때문일까?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은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초라한 나귀새끼를 타고 터벅터벅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셨다. 건장하게 키가 크고 위엄 있는 갈퀴를 휘날리는 말은 승리자가 타는 동물이지만 키가 작고 볼품없는 나귀는 승리자를 위한 동물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사람이 나귀를 타고 나타나는 것은 자신의 비천함을 표현하고 화친을 요청하는 표시이다. 예수님은 화해의 사신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고 죽음의 제물이 되기 위해서 그 성에 들어가셨다.
오늘날 사람들은 영광을 얻기 위해서 경주마처럼 쉼 없이 달려간다. 우리는 늠름한 흰 말을 타고 사람들의 환호와 칭송을 기대하며 고향으로 입성하는 꿈을 꾸고, 다른 사람들 위에서 승리자의 모습으로 군림하는 꿈을 꾼다. 그것은 참된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이 재난의 시기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기독교인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재난 중에 버려두신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물질을 추구하였고 개인의 명예와 평안을 추구하며 달려왔다. 아무리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고 물질이 풍부하여도 성도는 예수님처럼 겸손한 자의 마음과 섬김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우리 주님은 종려주일에 죽음이 기다리는 사지로 향하여 스스로 걸어 들어가셨다. 뭇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을 드리우기 위해서 사지로 들어가셨다. 그래도 이 세상이 살만한 것은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약 5000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바이러스 감염지인 우한으로 들어갔고, 한국에서도 950여 명의 의료관계자와 300여 명의 구급대원들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대구로 갔으며, 지금 미국에서도 수많은 의료관계자와 봉사자들이 뉴욕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 마음은 곧 예수의 마음이다. 그들이 기독교인들인지 모르지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보호해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성도는 비천한 모습까지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고, 주님의 사랑으로 사지까지 달려가는 사람이다.
dik0184@yahoo.com
04.25.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