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權利)와 의무(義務)

권리에는 반드시 의무가 따른다. 따라서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논리는 부당하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형평성에도 위배된다. 폐쇄된 북한사회나 독재자의 전횡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국민의 4대 의무가 헌법에 분명하게 명시되어있다. 근로, 납세, 국방, 교육이다. 이런 의무를 다할 때 주어지는 권리가 있다. 권리란 어떤 일을 행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인데 민주주의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에는 자유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참정권, 청구권이 있다. 

자유권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권리로, 신체의 자유, 이동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이 다. 평등권은 개인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로서 직업, 나이, 성별, 신념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행복추구권은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보장받을 권리이고 생존권이라고도 한다. 참정권은 국민이 정치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다.

이러한 권리는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으로, 국가가 함부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헌법에 정해 놓았다. 권리에는 당연히 의무가 따르고 의무에는 당연한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를 아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상식에 해당이 된다.

좀 색다른 것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한다. 사람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의 하나다. 거기에다 다른 피조물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은혜를 입은 것이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것의 다른 표현은 곧 권리다. 사람에게는 마땅히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 3분의 2는 여전히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으며, 죄로 인하여 훼손된 사람에게 있어야 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다. 사회주의 공산권의 17억, 이슬람권 17억, 힌두교권 14억을 합한 48억 내지 50억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채 이 마땅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런 권리박탈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구원자도 되시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 권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단순한 힘, 그 이상이다. 거기엔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사느냐 죽느냐가 달린 중차대한 사안에는 그저 백 세 시대를 맞이한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영원한 삶인 천국과 영원한 죽음인 지옥이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 것은 그 어떤 권리보다 앞서고 중요하다. 또한 영원을 판가름하는 권리에는 그에 필적하는 의무가 요구된다. 

근로나 납세, 국방과 교육의 의무 정도가 아니라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권리를 찾아줄 의무가 우선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전도 혹은 선교라고 한다. 국민의 의무나 권리에는 포함되지 않은 절대들이 녹이 슬어 버려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 권리도 이를 전해야 할 의무도 모른 채 오늘을 허비하는 인생들이 참으로 많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18-20)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구도 그런 권리가 있었음을 몰랐다고 핑계할 수도 없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말씀을 등한히 여긴 의무태만에 해당되는 까닭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이 땅에서 취할 가장 큰 사람의 권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 알리는 것이 가장 시급한 성도의 의무임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hanmac@cmi153.org        

 

02.0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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