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방문 중에 언니들하고 “교회오빠”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우리 주변의 욥”이라는 영어 타이틀이 붙어 있는 “교회오빠”는 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한 성도의 투병과 그 가운데 그가 끝까지 붙들었던 믿음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처음 언니를 통해 영화의 내용을 대강 들었을 때는 별로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다. 거의 삼십년 전 남편을 암으로 보낸 슬픔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고, 또 다른 사람의 아픔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회오빠”는 이제는 주님 품에 있을 고 이관희 집사님이 겪은 고난의 무게와 그 고난을 믿음으로 감당해내는 모습을 통해 크리스천이 겪는 고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결혼 후 첫 아기가 태어나고 산후조리원에서 아기가 집으로 오던 날 알게 된 대장암 4기 진단, 아들의 암 소식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을 택하는 어머니, 곧 이어 아내의 혈액암 4기 진단, 이렇게 갑자기 닥치는 고난의 연속을 믿음으로 맞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타락 이후 고난은 우리의 삶에 “실존의 고통”이 되었다. 깨어진 관계, 사고, 질병, 깨진 꿈, 죽음 등 우리의 삶에 여러 모습으로 찾아오는 고난에 대한 질문은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하나님의 선하신 속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고난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 신비의 영역이다. 시편에서 읽을 수 있는 고난에 대한 탄식과 절망, 그리고 도움의 요청은 깜깜한 동굴에 갇혀 있는 듯한 우리에게 고난 중에 큰 위로가 된다. 60%의 사람들이 일생 중 한번은 고난을 겪으며 그들 중 70%는 그 고난을 이겨낸다는 논문을 읽었다. 또한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의 경우 시간이 지난 후 그 고난이 오히려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갈수록 태산 같이 느껴지는 요셉의 고난이나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연속의 고난을 당하는 욥이 고난 이후 영적인 성장을 보이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성장을 위해서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신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 당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계신다는 것일까? 그래서 고난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님에 대한 연구는 옛날부터 “신정설”이라는 주제로 존재했다. 욥의 친구들이 해석한 것처럼 고난을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보는 견해나 우리를 교육하시는 기회로 보는 견해는 하나님을 무섭고 엄격한 분, 팔짱을 낀 채 우리가 고통 중에 있는 모습을 지켜만 보시는 잔인한 분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을 우리의 동맹자로 보는 견해는 고난 중에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이해한다. 하나님을 친밀하시고 보호해주시는 우리 아버지로 생각할 때 비록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고 고난의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믿음의 힘이 생긴다. 충격적 경험은 우리의 영성에 영향을 끼치지만 동시에 우리 각 개인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위기의 해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수많은 약물치료와 잠시 동안의 회복, 그리고 다시 찾아온 암 앞에서 두려움을 믿음으로 다루며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 앞에 담담하게 서 있는 한 성도의 모습은 모든 관람객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진한 감동을 남겼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맑은 정신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싶다며 말기 암의 통증 가운데에서도 몰핀을 거부하는 믿음의 거인, 하나님이 본인의 기도에 침묵하시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병이 낫는 것을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단절된 것 같아서 너무 두렵다던 그의 인간적인 고백이 가슴 깊이 남는다. 오늘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을 걷는 성도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고난을 덮을 수 있는 평강이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lpyun@apu.edu
07.13.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