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의 시간

사람들은 속이 따뜻하다는 사실을 밖의 추운 날씨가 돼서야 자기 입김을 통해 알아차린다. 이렇게 더운 요즘엔 그 추운 날의 입김이 그립다. 

성경공부들이 다 방학을 해 간만에 애틀랜타에 있는 친구를 보러 다녀왔다. 그런데 친구를 보러가는 기내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을 적고 다음 학기에 어떤 성경공부를 할까... 뭐 그 담에는 어떤 사역하고... 어떻게 선교하고...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범벅이 되어 쉬지 못하는 자신을 본다. 그래. 내일은 내 일이 아니라 내일의 일이다. 그래서 미래의 일을 끄집어내서 염려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더 이상 죽기를 두려워하여 일생에 종노릇하며 사는 일들을 그만하자. 그리고 이젠 새롭게 태어난 나, 예수님 안에 있는 나, 의와 희락과 평강 안에 사는 나로 돌아가자고 다짐해보며 비행기에 올랐다. 

누군가가 보내준 글에 이런 글이 있었다. ‘일 안하고 놀 때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 진짜 영성의 사람이다’ 라고.... 그렇다. 진정한 영성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말씀을 보고 대표기도를 인도하느라 열심히 기도하는 때도 나타나야 하지만,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쉬고 놀 때도 여전히 성령으로 충만하다면 그야말로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성령의 주관을 받고 있는 증거가 아닐까. 

그렇다. 우리의 훈련이란 영 안에서 내 마음의 생각들을 놔버리는 것이리라. 그래서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셨다. 감정이 나를 붙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나는 분노와 걱정과 두려움에서 놓일 수 없으리라. 문제가 나를 붙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나는 늘 문제의 노예가 되어 살리라. 병에 붙들린 삶을 사는 한 나는 결코 병에서 치유 받지 못하리라. 

우린 살아가면서 실제로 내가 손에 꼭 움켜쥐고 놓지 못하고 사는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손을 쫙 펴서 놔버리는 열쇠는 바로 내가 쥐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 우린 영으로서 몸의 행실들을 죽여야 살 길이 열리리라. 극렬히 타오르는 풀무불의 숨 막히는 열기 속에서도 평안 했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분명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인 삶의 이그젬풀(example)이 아닐까? 

이런 것들을 확 놔버리면 무한한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내 인생가운데 새롭게 펼쳐질 텐데 말이다. 그 창조 역사는 그야말로 이 우주만큼 무궁무진 하지 않을까. 오늘, 내 전화기 속에 들어있는 카톡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저장해둔 많은 이름들이 어쩌면 1년 동안 한 번도 연락 되지 않은 이름들이라 해도 그 분들이 모두 모두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며 하나님의 창조 역사 안에서 살아가는 그런 신령스런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이 되길 기원해본다.    

 

 

changsamo1020@gmail.com

06.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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