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목회를 하고 싶다(하)

참는 것. 이것은 더 어렵다. 듣고 참는 것은 내 안의 작심과 결단으로 가능하다. 내 안의 문제이며 내 정신세계의 문제다. 그러나 껴안는 것은 다른 사람을 그것도 고슴도치처럼 가시투성이인 사람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품는 것이어서 더 힘들다. 그러나 품지 못하면 타인이 되고 적이 되고 만다. 평생 목회를 되돌아보면 이 부분이 약했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헤쳐 나온 지난날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다시 목회를 한다면 다 들어 주고 쓰리고 아파도 참고 온 동네를 다 품고 싶다. 그리하여 지혜로운 바보가 되고 싶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실적 1위를 달리던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가 2009년에 발생한 급발진사고로 시장점유율이 추락했다. 총 8백만대 이상의 리콜에 손해액은 1억엔(1조원) 정도였다. 사건이 그렇게 된 원인은 ‘문제가 있다. 문제가 발견됐다’라는 고객들의 소리를 외면했기 때문에 큰 사건으로 폭발했다는 것이다.

듣고, 참고, 품고! 이런 목회를 하고 싶다.

 

양육 목회

목자의 책임은 양털 옷 입고 양가죽 신발 신고 양고기 먹는 것이어선 안된다. 목자의 사명은 양을 돌보고 키우는 것이다. 양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일이 어렵다. 병들어 아파하면 고쳐 주고, 길 잃으면 인도하고, 배고파하면 먹이를 주어야 한다. 언젠가 양은 털을 내놓고 고기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목자는 털과 고기를 탐하면 안 된다. 털과 고기와 기름은 곧 돈이긴 하지만 목자가 눈이 어두워 시도 때도 없이 양을 도축한다면 목자가 아니다. 목자는 양을 사랑하고 키워야 한다. 그리고 양은 목자를 따르고 신뢰해야 한다. “나는 선한 목자라” 하시던 주의 음성이 들린다.

양을 양답게 키우는 목자가 있고, 양을 물량 가치로 취급하고 키우는 목자가 있다. 사이비나 이단들은 대부분 후자에 속한다. 양을 팔아 부를 축적하고 영화를 누리는 목자는 참 목자가 아니다.

다시 목회를 한다면 하나님의 일꾼을 키우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삶이 숨쉬는 아기학교,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신학교를 세우고 철저한 신앙교육으로 사람을 키우고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현실 때문에 기독교학교들은 허울뿐, 기독교학교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한 지 오래다. 신학교도 운영과 제도에 발목이 잡히고 과정과 커리큘럼에 갇혀 한국교회가 바라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교육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꿈도 있다. 그것은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목회자와 신학자 양성은 물론 선교사를 발굴하고 훈련하는 일, 정치, 문화, 예술, 과학, IT, 비즈니스 등 모든 분야의 리더가 될 나무들을 묘목부터 키우고 전 세계 대학에 나가 공부할 수 있는 장학제도를 마련하고 싶다. 그 나무들이 곧고 바르게 자라 20-50년이 지나면 국가가 변하고 한국교회가 바뀔 것이다. 그런 꿈이 이뤄지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70세 정년을 3년 앞둔 대형교회 어느 목회자의 말이 생각난다. “이제야 목회가 뭔지 조금 알 것 같다.” 목회 성공했노라고 큰소리치는 것도, 목회를 잘했다고 포상하는 것도 옳지 않다.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주님 바라기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이것이 목회자의 고백이라야 한다. 이제야 철이 들었다면 언제 어디다 쓸까? 

동역자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 그것은 “목회는 완성이 없다. 다시 시작한다는 다짐으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iamcspark@hanmail.net

 

06.0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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