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모에 그 자식!

늦은 밤에 절친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워낙 막역한 사이라 개의치 않았다. ‘아빠 계시니?’ ‘예! 계시기는 하는데 지금 바꿀 수가 없어요.’ 친구 목사의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응! 그러니? 그래도 아빠하고 꼭 통화를 하고 싶은데.’ ‘안돼요. 아빠 주무시는데 내일 다시 전화하세요.’ ‘아니야. 내가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야! 급한 일이 있으니 아빠 좀 바꿔줘.’ ‘글쎄... 그래도 안돼요.’ ‘그래!  너 몇 살이니?’ ‘6살이에요.’ ‘그래 참 착하구나.’ ‘그런데 급한 일이야… 아빠 좀 깨워줄래?’ ‘안돼요. 왜? 아빠 주무실 때 깨우면 아빠가 쌩 지랄을 치세요. 그래서 깨울 수가 없어요.’ 했단다. 누가 지어낸 얘기였으면 참 좋겠다. 평소엔 좋은 아빠인데 건드리면 쌩 지랄을 하는 아빠가 된다면 참 곤란하다. 보통 때에는 착한 장로 집사 권사 같은데 조금만 건드리면 쌩 지랄을 하는 부모가 된다면 정말 대책이 없다. 자신은 속여도 아이들은 속일 수가 없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아이들은 심는 대로 거둔다. 끝까지 착함을 심고 진실을 심어야 한다.  

과속으로 경찰에게 차 한 대가 잡혔다. 면허증을 제시하라고 했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내가 술 마시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냐?’ 옆에 있던 부인이 중얼 거린다. ‘면허도 없는 사람이... 내가 운전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요? ’ 뒤에 있던 꼬마 아들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빠! 내가 맞췄지요? 훔친 차는 꼭 들킨다고 아까도 말했지요?’ 막가파 가정의 비극적인 단막극이다. 이런 가정의 자녀들의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미국의 1700년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청교도 목사로 조나단 에드워드가 살았다. 동 시대에  불신자로 뉴욕에서 살았던 맥스 쥬크 가문이 있었다. 150년의 저들의 후손들의 행적을 조사 비교해봤다. 맥스의 후손 중에는 7명의 살인자들과 60명의 강도전과자, 50명의 창녀들, 130명의 범법자들, 310명의 극빈자들과 400명의 정신적인 육체적인 장애인들로 살면서 정부에 끼친 손해액을 환산하면 125만 달러가 되었다고 한다. 반면 에드워드 목사의 후손들은 1,394명이었는데… 100명의 목사와 100명의 선교사, 80명의 공직자들, 65명의 교수들, 30명의 판사와 3명의 주지사, 3명의 시장, 3명의 상원의원과 1명의 부통령을 배출했다고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이 딱 맞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교사이다. 자녀를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 식당에서 산토끼처럼 뛰는 자식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젊은 엄마들이 많이 걱정된다. 아빠는 다소 모자라도 괜찮다. 그러나 왕의 명령도 무서워하지 않고 자식을 몰래 숨겨 키웠던 요게벳 같은 엄마가 없었다면 출애굽의 영웅 모세는 없었을 것이다. 신정시대와 왕정시대를 함께 이끌었던 인재 사무엘도 엄마 한나의 비전에서 태어났다. 100세  훨씬 지난 늙은 아버지의 동아줄에 묶여 번제단 장작더미에 한마디의 항변 없이 누워있던 이삭의 그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어린이 주일과 어머니 주일을 맞으면서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과 아빠들을 위해 힘써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기왕이면 맥스 쥬크가 아닌 조나단 에드워드 가문같이 그 부모에 그 자식들이 많이 나오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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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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