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도 유행이 있는 것일까? 한때 ‘4차원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한국 기독교에 유행처럼 퍼진 적이 있었다. 적극적인 사고는 꿈을 이룬다, 꿈을 꾸라, 꿈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이 꿈은 비전으로… 비전은 믿음의 실상이 된다고 했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도무지 이런 종류의 단어들이 실종된 세상같이 되어버렸다. 과연 꿈이나 비전이나 상상은 퇴색한 시대적인 유물취급을 받아야 마땅한 것인가? 과거에만 필요했고 현대와 미래에는 상상과 비전 같은 단어는 없어도 된다는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여전히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에도 상상과 꿈과 비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꿈도 상상도 비전도 없어 보여서 답답하고 안타깝다. 인생 성패의 비결은 상상의 능력 차이에서 결정된다. 하찮은 생각 하나가, 엉뚱한 상상 하나가 증기기관차를 만들었고, 공중을 나는 비행기의 단초가 되지 않았는가? 보름달을 보면서 계수나무 옥토끼 타령하고 있을 때 서양인들은 달나라 착륙을 상상하고 있었다.
상상이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인류 문명의 발전이 모두 다 생각에서 상상으로, 상상이 비전으로 연결될 때 향상되어 왔다. 한 형제들이 공중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새들을 보면서 사람도 날개만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상상을 시작하면서 비행기를 만들어낸 라이트 형제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얘기이다. 상상은 현실을 미래로 이어가는 길목이다.
상상은 시뮬레이션 효과가 있다. 월남전에서 포로가 되어 독방에 7년을 갇혔던 미군 병사가 매일 상상으로 골프를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석방되어 나온 후 곧 바로 프로골퍼가 될 수 있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상상의 능력을 증명하고 있다. 상상은 창조의 씨앗이다. 상상이 소설가 조엔 롤링을 만날 때 해리포터 시리즈가 나왔고, 상상이 피카소의 손에서 추상 걸작들을 쏟아냈다. 미켈란젤로를 만났을 때 피에타, 다비드의 살아 있는 대리석 명품들이 나왔다. 탐험가 콜롬버스를 만났을 때 아메리카 대륙이 나타났고, 찰스 베비지를 만났을 때 컴퓨터를, 스티브 잡스를 만났을 때는 셀폰이 되었고, 상상이 외과의사 손에서는 복강경 수술로 간편한 수술들을 받게 되었다. 지금도 그 상상은 초현실을 너머 실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3D 프린터의 발명으로 모터사이클도 만들고, 사람의 신장암 수술도 성공적으로 서울 아산병원에서 마쳤다고 한다. 사람의 장기부품도 개발하고 있는데 도대체 앞으로의 세상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가공할만한 염려가 앞선다.
상상은 참으로 놀랍고 위대하다. 그런데 이 상상이 비뚤어진 사람 속에 들어가면 세상은 비극과 혼돈과 자멸의 세상을 만들 것이다. 상상이 비뚤어진 집권자들을 만났을 때 희대의 악인 히틀러를 만들었다. 일탈의 사상가를 만났을 때 공포 사회를 만들고 무수한 인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현대인들의 상상이 기존질서와 체계를 모조리 초월해 버릴 것이다. 상상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지만 인간 영혼 구원 영역은 결코 넘나 볼 수 없다. 구원은 상상이 아니라 오직 예수 믿음에서 오는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천하 인간에게 구원 얻을 상상과 아이디어는 어디에도 결코 없다. 상상의 능력은 무한하나 복음의 능력은 절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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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6.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