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에서는 일찍부터 광야로 찾아가는 수도사들이 많았다. 아마도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고 더 나아가서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광야에서 40일 동안을 치열한 시험을 받으신 것에 착안한 일인지 모른다.
그리스의 중부에 위치한 동방정교회 소속인 아토스 산 높은 절벽위에 구멍을 파고 그곳에서 수도사들이 거하면서 지낸 흔적이 많고 일부는 지금도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 이들을 은수자(Hermit)라고 칭하는데 이 말은 광야라는 뜻의 헬라어에서 유래되었고, 수사(Monk)-혼자-라는 뜻의 헬라어에서 왔다.
성프란시스가 수도했던 수바지오산(Monte Subasio)계곡에 있는 수도원(Eremo)도 아시시에서 한참 떨어진 해발 791m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에 가보면 성 프랜시스가 기도하고 묵상하며 지내던 동굴이나 기도하던 장소들이 손때가 묻어있는 모습으로 산재해 있다.
이태리에는 수도사들이 많다. 아주 똑똑한 분들, 공부를 많이 한분들이 깊은 산속에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기도와 명상, 그리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섬긴다. 참 놀랍다 싶다. 놀라운 것은 410년 경 코트족의 알라리크가 로마를 향해 쳐들어 올 때 수도원에 있던 여자 수녀들 3천여 명이 로마로 피신하여 들어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남자 신부나 수도사들은 얼마나 더 많았을 까 싶다. 그렇다면 400년경에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경건한 삶을 살았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은 깊은 산속이나 골짜기 아니면 사막에서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세상을 등지고 외로운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말이다. 종교개혁을 할 때 루터는 교회 밖에서 개혁운동을 시행하였고 스페인의 예수회 수사 로욜라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개혁의 기치를 들었다.
그런데 사막 한 가운데서나 혹은 깊은 산속이나 골짜기에서 고독하게 성경보고 기도하는 경건 생활이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노파심을 갖게 된다. 현재도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두세 명이 드리는 새벽 예배의 효용성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해해서는 안 되지 싶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는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삶을 고집해야 한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내 생각으로는 그 도시가 아주 풍요로웠다고 본다.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고 했기 때문이다(창13:10)의 땅이 얼마나 좋았으면 롯이 아브람을 떠나 그곳으로 찾아갔을 까? 그런 지역이었기에 그들은 부요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테고 고로 그들은 더욱 방탕하고 지나치게 되어 동성연애에 심취하는 삶을 고집했을 정도이었다. 저들은 영적으로 한 없이 더러웠고 동물적 삶을 추구하였다. 이런 삶에 미쳐 사는 저들을 보면서 롯은 매일 마음이 상했다고 했다(벧후2:7-8). 이런 그를 베드로는 의인이라고 칭했다. 그런 의인들이 세상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유예하신다 싶다.
그렇다면 깊은 산속이나 골짜기 또는 사막에서 고독과 맞서면서 불법이 난무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는 수많은 의인들,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멈추게 하는 거룩한 자들이라 여긴다. 더 나아가서 세상의 더렵혀짐의 속도를 더디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지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앞을 지나가는 흑색의 통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수도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당신들의 거룩한 선택 때문에 우리가 평안을 누립니다, 라고 인사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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