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 중 의 하나가 죽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강렬 하고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가 지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이런 선입견은 사람 자신의 진정한 상태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사람들은 육 신의 호흡을 하고 있으면 살 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의 진정한 상태 에 대해서 보다 완전하고 진 정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허 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를……”(엡2:1a). 성경은 사람 들의 상태에 대하여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었다고 단정 한다. 성경이 말하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은 영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이 영적인 죽음은 모든 인류에게 찾아온 것이 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영적 죽음의 실재를 거부할 수 없 다. 그렇다면 영적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의 단절이다. 달리 표현 하면 하나님과의 인격적 소통 이 막힌 것이다.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즉 소통의 단절이 모든 사람이 처했던 상태이다. 성 경이 말하는 허물과 죄는 인 류가 가진 본질적인 죄의 문 제를 말하고 있다. 당신이 가진 본질적인 죄의 문제는 당신이 살아오면서 범 한 행위의 죄가 발생하기 이 전의 문제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 을 거스르고 선악과를 먹은 죄를 말한다. 문자적으로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 의 명령이 최초의 인간 아담 에게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하나님 은 오고가는 모든 세대의 사 람들을 대표하여 아담에게 명 령 하신 것이다. 아담에게 내 려진 명령은 그 자리에 없었 던 모든 인류에게 내려진 하 나님의 명령이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간주하신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 가? 받아들일수 있겠는가? 믿 음은 하나님이 그렇게 간주하 신 것을 믿고 받아 드리는 것 이다. 믿음은 아담에게 내려 진 명령은 곧 당신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믿음은 인류의 대표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담의 행위는 모든 인류의 행위로 하나님에 의해 간주되 고 곧 당신이 행한 행위로 하 나님에 의해 간주된다는 사실 을 받아들이게 한다. 참으로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다. 이 부분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지 는 고백이 필요하다. 선악과 명령이 나와는 상관이 없으며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행위 또한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 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게 생각 한다면 당신이 행하는 모든 기독교적 활동들 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아담이 먹은 선악과가 곧 내가 먹은 것으로 하나님이 간주 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고백이 없다면 모 든 것을 중단하고 이 문제 앞 에서 씨름하라. 그 중차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기독교 에 관해서 논한다는 것은 너 무나 무의미한 일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혹 살아오 는 동안에 범했던 크고 작은 죄들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뉘우칠 수 있다. 그러나 그보 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
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행 위가 곧 나의 행위였음을 성 령의 역사로 믿음으로 받아들 인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말라. 대 단히 그리고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다. 만약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행위를 동화속 이야기 정도로 가벼이 여기고 기독교를 알아 간다면 기독교 생활의 진도는 나갈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기 독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이며 백해무익한 일이다. 기독교의 정수는 기독교에 관 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기독 교의 정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인격이 얼마나 고백적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있느냐에 달 려 있는 것이다. 학문의 세계 는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자 랑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전 인격적 고백이 얼마나 친밀하 고 깊은가를 자랑하는 것이 다. 교회학교 유치부 어린이들 이 듣고 배우는 기독교 복음 의 기초 진리로 인하여 기뻐 하고 즐거워한 대 학자가 있 다. 그는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에는 박식한 율법적 지식을
소유한자로 사람들에게 발견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리 스도를 만난 이후에는 박식한 율법적 지식을 소유한자로 사 람들에게 발견되고자 했던 과 거의 자신이 수치스러워졌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로 사람들에게 발견되기를 갈망하였다. 사도 바울에게는 많은 지식이 결코 관심이 아니었다. 그의 관심 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였다. 만약 기독교가 사람의 잘못 된 습관 몇 개를 고치거나 개 선하는 것이라면 많은 지식이 충분히 관심거리가 될 수 있 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잘못된 습관 몇 개를 고치거 나 개선해 나가는 종교가 아 니다.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 는 근본을 완전히 바꾸는 것 이다. 그런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따라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학문화 하거나 혹은 어떤 ism(주의)화하려는 모든 시도 를 내려놓으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자신에게 어 떤 분이시며 당신 자신을 위 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때 문에 감격하고 즐거워하고 삶 의 소망을 가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