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경쟁과 목적지향의 세상

목적과 사명을 상실하지 않는 복된 삶

한국에서 40대 중반에 직원 6천명의 작지 않은 기업을 이끄는 집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분은 미국에서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믿음 하나로 오랫동안 한국의 기업사회에서 생존하고 성공한 분이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임에도 늦은 결혼으로 어린 초등학생 자녀를 가진 그분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겪은 교육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차이를 설명했다.

토기와 거북이 그 이야기는 얼핏 보면 ‘부지런해야 한다’라는 단순교훈에 이르게 되는 것 같지만, 훨씬 더 많이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토끼라는 존재는, 비교경쟁 가운데 나름의 기쁨을 누린 존재였다는 것이다. 거북이에 비해서 자신이 빠르니까, 경주를 시작한지 한참이 지나도 상대방 거북이는 머리털도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거북이에 비해서 자신은 꽤 모든 면에 우월하고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에 반해, 거북이는 토끼와의 경주에 따른 승부자체에 의미를 두었다기보다는 당연히 되지 않을 게임에 나섰다는 것부터가 거북이 안에 토끼가 모를 아주 속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분의 설명으로는 거북이는 이미 시작할 때부터, 토끼와의 이기고 지는 승부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북이는 토끼처럼 비교경쟁에 관심을 가지고 당연히 이길 절대승자로서의 여유를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목적지향적인 존재로서 토끼와의 경주자체를 처음부터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분이 첨언한다. 토끼가 이기고 거북이가 졌다고 해서 거북이가 낙심했을까? 그럴 거면 경주는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 그분의 생각이었다.

비교경쟁과 목적지향 한국의 많은 학부모들과 공교육의 특징은 비교경쟁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 아이 자체보다는 상대방 엄마보다, 이웃집 아이보다, 좀 더 좋은 학교와 공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내 아이가 아무리 잘해도 이웃집 애보다 못하면, 그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 아이가 세칭 일류대로 꼽는 연고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가도, 앞집 아이가 서울대를 들어가면 비교경쟁에 시달려 결코 기쁨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교육의 거센 치맛바람을 만들어 낸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그분은 미국의 교육시스템은 목적지향적이고, 자녀의 독특성과 개성에 초점을 맞춘다고 인정한다. 일부 예외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은 비교우위의 대학을 찾기 보다는 공부자체의 즐거움을 가지고 노력하면서 각자의 삶의 가치관을 정비하면서 다르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자녀도 미국에서 크고 있는데, 자기 앞가림 잘하는 한국의 애들에 비하면 지금은 바보(?)같아 보여도, 나중에 대학이후에는 차이가 벌어져서 후에는 세계를 이끌고 나가는 미국의 차세대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목적지향적인 교육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교우위 목회와 목적지향 목회 열변을 토하시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회사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싶었다.

우리 교회는 비교우위 속에서 이 지역의 교회들보다 조금 사이즈가 나으니까, 혹은 다른 미주 한인 이민교회가운데 그래도 여건이 조금은 나으니까, 그래서 우리교회가 그 어느 교회보다 자랑스럽고.... 등등. 그러나 참된 교회와 성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다른 교회보다 뭔가가 낫다는 비교급으로 만족하는 형태가 아니라, 사람이 얼마를 모이든 간에 교회 사이즈가 어떠하든지 간에, 각자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최고의 예배를 올려드리며, 성도 개개인의 영혼이 예수 믿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교회, 그래서 ‘누구누구보다 더 잘 하는 데가 아니라, 누구누구도 안하는데 라는 핑계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 상황에 관계없이 사명을 붙들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우리가 꿈꾸고 생각하는 온전한 성도, 온전한 교회의 모습, 세상을 살아가는 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곧 교회는 설립 13주년을 맞이하고, 나의 이민 목회 연한도 같아진다. 이민 교회 10년 이상 되는 것이 특별하다 하지만, 교만할 이유도 포기할 근거도 없음이 주님의 은혜로 덮어주고 가리워주심의 결과이었음을 고백한다. 목회의 일이 세상일보다 쉽지 않음은, 목회의 일들이 영적인 일이고 사람의 일이기에 10년 20년 30년을 했기에 기술을 잘 배우고 익혀서 나아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회가 잘되던지 안되던지, 반대로 안되던지 잘되던지 아무 차이 없더라는 것이다. 잘되는가 싶어서 교만할 이유도 없고, 생각만큼 열매가 없다고 해서 포기하고 그만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굳이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좋아서 행복하듯이, 좋으신 주님 안에서 그저 행복을 누릴 따름인 것이다. 또 상황과 주변 환경을 생각하고 비교하기 시작하면 너무 좋으신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주님으로 행복하지 못한 너무나 불행한 목사가 되고 마는 비참한 경험의 숙지 탓이기도 하다.

비교경쟁에 사로잡혀 목적을 상실하지 말라. 때로는 요셉의 자랑스런 채색 옷이 찢겨나가듯이 분명한 하나님의 비전이었는데 그것이 한순간에 죽음의 구덩이에 던져짐과 같은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인도를 볼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고백하게 되는 것은,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주님이 주시는 최선의 영광을 바라보며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복되게 걸어가는 걸음위에 있더라는 것이다.

목회에 성공과 실패가 어디 있을까? 종으로 불러주시고 사명을 맡겨주신 때부터 우리는 이미 주님 안에 영원한 승리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주님 앞에 서는 날 까지/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변함없을 때, 목회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영원한 승리자/영원한 행복자가 되는 것이다. 목회뿐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마음 속 깊이 소망한다. 비교경쟁에 사로 잡혀 잠시 승리를 맛보고 그것이 모든 것인 양 궁극적인 목적지를 상실한 불행한 토끼 같은 목자가 아니라, 마침내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허락하신 목회의 환경에 감사하며, 참 좋으신 주님 안에서 행복한 목자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승리를 맛보는 참 좋은 거북이 같은 종이 되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거북이가 좋다. 거북이 만세!

davidnjeo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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