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비움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이미 가진 것조차 하나씩 내려놓아야 된다. 편하고 홀가분하기 위해서다. 기력이 쇠해지면 자기의 몸조차 가누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다는 그 자체가 무겁고 거추장스럽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고 기력이 쇠해질수록 욕심은 더 커지기만 한다. 비워야지! 내려놓아야 해! 아무리 자신에게 되뇌고 강조해도 소용이 없다. 

사람은 너나없이 자신을 믿기가 어렵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반증이다. 때론 남보다 더 믿기가 어려운 것이 자신이다. 남은 알 수가 없지만 자기 자신은 나름 얼마나 무지하고 무능한가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선이 다가오면서 대통령 후보들의 면면이 가관이다. 나름 똑똑하고 이지적이고 뛰어나다고 여기는 제 잘난 맛에 살던 후보들일 것이다. 그런데 너 죽고 나 살자는 진훍탕에 빠지면 모두 다 도긴개긴이 되고 만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고상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독이 오른 성난 삿대질이 난무할 뿐이다. 의혹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치를 보인다. 의인은 없나니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그러니 대통령 후보라 할지라도 흠도 점도 있기 마련이다. 더 높았고 더 누렸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였으니 그만큼 더 허물도 있을 것이다.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현장에서 예수님이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시자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돌을 그 자리에 내려놓고 그 현장을 떠났다고 한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살면서 그만큼 더 많은 죄를 지었을 것이고 그래서 먼저 돌을 내려놓았다. 대통령에 출마할 정도라면 당연히 흠도 점도 많을 수밖에 없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의혹이 제기되면 진솔하게 인정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모 후보에게 기자가 만약 다음 생에서 또 대통령과 아내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찌하겠느냐고 묻자 아내를 선택하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내려놓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일진대 지금 제기되는 의혹을 명쾌히 해소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 감춰두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되고나면 다 감춰지거나 묻힐 것이라 여기는 것일까? 진실은 언제든 드러나게 되어있다. 촛불집회에 이는 탄핵으로 무너진 전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복 받은 나라가 되기 위해선 하나님과 국민을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선출되어야 한다. 체면도 권위도 내려놓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사람의 내음을 풍기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비움은 채우기 위해 필요한 절차다. 채움의 우선순위가 비움이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인생의 문제에 대해 예수님이 교훈하신다. 먹고 마시고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하기 전에 하늘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기 비움 즉 자기 부인을 통해 더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인생의 말년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 중의 하나가 무엇인가 소유한 것들을 날마다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절대로 쉽지 않다. 독한 마음을 먹고 버리러 갔다가도 ‘아냐, 언제 다시 써야 될지도 몰라’ 하면서 되가지고 오기가 일쑤다. 그뿐이 아니다 누군가 버린 것을 ‘이 아까운 것을 왜 버려?’ 하면서 보태서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니 집의 평수가 문제가 아니라 여기저기 쓰지도 않는 물건들로 그득그득하다. 삶의 편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물건이다. 그러나 버리지 못하면 삶의 편리는 뒷전이고 이리저리 차이는 물건들이 삶의 짐이 되고 만다.

마음도 다르지 않다. 지난 세월을 잊는 것이 은혜라는 말을 왜 하겠는가? 살아온 세월의 기억과 추억들이 그대로 머릿속과 마음에 저장이 되어있다면 온전한 정신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산만하고 헷갈려서 오늘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비워야 한다. 휴지통을 버리듯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잊혀져야 한다. 

주님의 말씀에 다시 귀를 기울여 보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4)고 하신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의 지금만이 내 시간이다. 어제를 비울 수 있어야 오늘의 지금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 한 해의 희로애락이 다 비워져야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와 소망을 채울 수 있다. 이것이 우선순위다.

hanmackim@hanmail.net          

11.13.2021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