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의 가난을 못 이기고 미국 남쪽 국경을 넘는 중앙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대폭 증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이 난관에 봉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지난달 미국과 멕시코의 남서부 국경을 무단을 넘은 이민자 수가 7만6000명이었다고 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수치이다. 대부분이 가족 단위 이민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5개월 간 국경 당국이 구금한 불법 이민자는 26만8050명에 달한다.
100여명씩 떼를 지어 국경을 넘는 경우는 7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단으로 국경을 넘는 사례는 2018 회계연도 기준으로 13건, 2017 회계연도에는 2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중앙아메리카 출신 이민자행렬(캐러밴·Caravan) 사태의 여파인 것으로 보인다. 케빈 매컬리넌 CBP 국장은 “(CBP가 관리할 수 있는 이민자의) 한계점을 훨씬 넘었다”며 “미 국경 보안이 위협받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밝혔다.
CBP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국경을 넘은 이민자 중 90%가 과테말라 출신이다. 맥컬리넌 국장은 “과테말라 출신 이민자들은 가장 많이 국경을 넘고 있다”고 말했다. 과테말라의 가족 단위 이민자들은 보통 4-7일 동안 차량을 타고 북상하면 미 국경 지대에 도착할 수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대부분의 과테말라 국민들은 고국의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미국행을 결심한다. 과테말라는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국가들과 함께 세계 최빈국으로 분류된다. 특히 최근 과테말라는 곡물 가격 하락,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농작물 생산 감소, 농부 간 토지권 분쟁 등으로 빈곤의 정도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 외에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도 꾸준히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국가인 온두라스 국민들은 일상적인 범죄와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자녀가 갱단 조직에 발을 들일까봐 고국을 떠나는 이민자들도 많다고 NYT는 전했다.
가족 단위로 미 국경을 넘는 중앙아메리카 출시 이민자가 증가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 법원은 지난해 6월 불법 이민자 가족을 분리 수용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관용 정책’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후 이민자들이 가족끼리 집단을 이뤄 국경을 넘는 경우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이 늘었다. 미국 이민법에 따르면 미성년 자녀를 데리고 있는 이민자는 불법 월경했어도 국경에서 72시간 이상 구금할 수 없다. 대신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출입국 관리 시설로 보내야 한다. 하지만 이 시설조차 텍사스에 2곳, 펜실베이니아에 1곳 밖에 없어 매주 수천명의 이민자들이 석방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불법 이민 차단과 국경 보안 강화 정책을 자신의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역대 최장기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를 불사하고,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하지만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이민자 수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평가가 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가비상사태 반대 결의안이 미 연방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통과되면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은 더욱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