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까지 물들이는 지하드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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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일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테러가 거의 확실해 보이는 지하철 폭발사건이 발생했다. 그 폭발로 최소 10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다쳤다.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용의자는 러시아에서 활동이 금지된 과격 이슬람 단체 소속으로 키르기스스탄 출신 러시아 국적자인 아크바르존 잘릴로프로 밝혀졌다. 소식통은 “폭발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 잔해들을 조사한 결과 자폭 테러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며 “그러나 최종 결론은 시신에 대한 유전자 감식 뒤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막강한 통치력을 기반으로 국민으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받는 푸틴 정권은 거의 8년 만에 발생한 테러 상황에 난감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바로 시리아 내전 개입이후, 옛 소련연방에 속했던 무슬림들이 대다수인 국가 출신 극단주의자들의 IS 가입과 활동에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위크는 러시아에서까지 지하드가 감행되고 있는 상황을 말해준다(Timeline of terror: From Beslan school siege to Sinai, Russia has always been a terrorist target: St Petersburg is the latest in a string of attacks against Russia at home and abroad.).]

스시 요리사인 잘릴로프는 2011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북부 16층짜리 아파트에 거주해왔으며,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돼 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러시아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폭탄이 터진 지하철 안에서 그의 시신 일부가 발견됐다. 이 남성은 폭발물을 배낭에 넣어 지하철로 갖고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고향이자 정치적 거점이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이날 정상회담을 위해 이 도시를 찾은 시기를 노려 사제 폭발물을 열차 내부에서 터뜨린 것이어서 배후가 주목된다. 게다가 이번 러시아 제2의 도시에서 발생한 폭탄 공격은 영국 런던 의사당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돌진 테러가 일어난 지 12일 만에 일어나 유럽 내부의 테러 우려도 커진다. 이번 폭탄 공격을 자행했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곧바로 나오지 않았지만 일각에선 러시아가 6년째 내전을 치르는 시리아에 개입한 것과 관련된 테러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의 테러 전문가인 폴 크뤽생크는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 이후 무슬림 민간인 사상자가 늘면서 지하디스트들이 러시아를 최우선 표적으로 꼽아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당국은 용의자인 잘릴로프가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몸담았을 가능성을 집중 수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옛 소련 국가인 키르기스스탄은 러시아 동맹국이지만 국민의 75% 이상이 무슬림이다. IS는 옛 소련 붕괴 이후 불안정한 체제와 사회 불만 세력의 득세를 틈타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적극적으로 모병해왔다. 다수의 민간인이 밀집한 대중공간을 노린 소프트테러라는 점도 IS의 범행과 닮았다. 잘릴로프는 키르기스스탄 제2의 도시이자 우즈베키스탄 민족이 모여 사는 오시 출신으로, 합법적 절차로 러시아 국적을 획득했다. 아직은 이번 공격의 배후가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만약 이슬람주의 단체와 관련 있다면 거의 8년 만에 러시아에서 감행된 최악의 테러 공격이다.

8년 전인 2009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사이를 운행하는 고속열차에서 폭발물이 터져 27명이 숨지고 130명이 다쳤다. 당시 이슬람 분리주의 테러단체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무슬림 분리 지역인 잉구셰티야 공화국의 테러리스트 12명이 그 공격에 참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잉구셰티야는 러시아의 지배에 강하게 저항한다. 러시아 당국이 이번 테러의 배후로 IS를 유력하게 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시리아 내전에 참여한 러시아와 옛 소련군 출신 테러리스트들이 러시아로 돌아와 공격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지난해 8월엔 복면 쓴 IS 대원이 유튜브 등에 동영상을 올리고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편을 돕기 위해 개입한 데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에서 지하드를 실행하라”고 촉구했다.

같은 달 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서약한 두 남자가 모스크바 외곽의 교통 신호등 앞에서 경찰 2명을 살해하려 했다. 몇 달 뒤인 지난해 12월 안드레이 카를로프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터키 앙카라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터키인의 눈으로 본 러시아’ 전시회 개막식에서 축사하던 중 터키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도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과 연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범인은 카를로프 대사가 쓰러진 후 “신은 위대하다. 시리아 알레포를 잊지 말라”라고 소리쳤다. 알레포는 러시아군과 시리아군이 공동으로 반군 거점을 겨냥해 집중적으로 폭격을 가한 시리아의 고도다. 이처럼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이래 IS 등 이슬람주의 테러 단체의 표적이 됐다. 2015년 10월에도 러시아 코갈라마비아 항공 소속 여객기가 이집트 휴양지 샤름엘셰이크를 출발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던 중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등 224명이 전원 사망했다. IS 이집트 지부 시나이(시나 윌라야트)가 배후를 주장했다. 러시아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비호하며 공습에 나선 지 한 달만의 일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이슬람주의 테러 경험은 IS가 공식 출범한 2014년 6월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첸 분리주의자들은 수 세기 동안 러시아와 싸웠다. 1994년엔 체첸과 러시아의 무력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됐다. 2년 뒤 러시아는 체첸에서 철수했지만 1999년 제2차 전쟁으로 체첸을 다시 점령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 동안 체첸과 다게스탄, 잉구세티야 등의 무슬림 공화국의 무장 단체들은 러시아를 상대로 저항 운동을 계속했다. 체첸 반군은 2004년 러시아연방의 북오세티야 공화국 도시 베슬란의 한 학교에 학생과 주민 등 1200여 명이 인질로 잡았고(33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어린이였다), 2010년엔 모스크바의 지하철역 두 곳에서 자폭테러를 일으켰다(40여 명 사망). 지금은 그들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이슬람주의 운동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IS 산하에 독자적인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