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복수의 이야기는 항상 통쾌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과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하자, 이에 격분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가 모든 병력을 이끌고 트로이에 쳐들어가 전쟁이 났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끔찍한 결말이다. 복수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아킬레스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촌지간인 파트로클루스가 전사하자, 아킬레스는 파틀로클루스를 죽인 이를 찾아 물불 안 가리고 복수에 나선다. 복수의 역사는 아마도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할 만큼 오래됐다. 주인공 오레스테스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살해하는 이야기를 다룬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을 비롯한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이르기까지 복수는 수많은 문학 작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경은 복수 이야기가 아닌 용서와 사랑의 이야기를 말한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순환을 끝내고 복수의 정치학이 아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용서의 역전을 말해준다. BBC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한 복수의 순환 고리가 단절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심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보도했는데, 한마디로 복수의 민낯을 그대로 여과 없이 보여준다(The Hidden Upsides of Revenge).]

누구나 나를 못살게 굴거나 괴롭힌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앙갚음하는 상상을 한다. 복수심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고 입 밖으로 꺼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노라고 저주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상상을 하거나 저주를 퍼붓는 순간 우리는 분명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는 왜 복수를 꿈꿀까? 학자들은 복수의 원리를 조금씩 밝혀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복수의 장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복수심은 무척 강렬한 감정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어떤 행동이든 서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이애미 대학교의 심리학자 마이클 맥컬로프는 10년 넘게 복수와 용서의 감정을 연구해 왔다. “복수심은 인간의 삶에서 무척 흔한 감정 중 하나입니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화가 나고 지금 이 아픔과 상처를 갚아주겠다는 생각은 어느 사회에 속한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

전체 살인의 20%, 학교에서 일어나는 총기 사고의 60%가 복수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복수는 정치 현상을 이해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두고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많은 언론은 “백인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복수”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급속한 세계화 흐름 속에 도태되고 버림받은 이들이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공격성에 관해서는 비교적 자세히 연구가 진행됐다. 술에 취하거나 모욕을 당하는 상황, 자기애가 강한 성격 등 공격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에 관한 연구도 많다. 반면 복수심에 관한 연구는 아직 많지 않다. 사실 폭력적인 행동을 원인부터 찬찬히 분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의 데이비드 체스터는 처음에는 사람의 공격성을 연구하다가 이내 폭력의 이면에 훨씬 복잡한 역학이 있음을 깨닫고 연구 주제를 바꿨다. 그는 어떤 것에 자극을 받아 폭력을 일으키기까지 그사이에 나타나는 감정을 일종의 “심리적 매개체”라고 부른다. “사람이 어떤 식으로 모욕을 느끼고 거기서부터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까지 어떻게 감정이 변하고 행동이 나타나는지가 궁금했어요.” 그는 앙갚음하겠다는 욕망이 핵심 기제라고 믿고 있다. “결국, 공격적인 행동의 원리를 이해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복수심에 관해 연구하게 됐죠.”

체스터 교수는 먼저 복수심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켄터키 대학교의 네이선 드월 교수와 함께 그는 사람들이 수모를 당하거나 사회적으로 거부당하면 정서적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거부당했다고 느낀 뒤에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의 뇌에서 고통과 관련된 영역이 가장 활성화됐다. 체스터는 “나를 위협하거나 해를 끼치려는 대상에 공격적으로 앙갚음하는 경향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채택한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후속 연구에서는 놀랍게도 감정적인 고통이 쾌락이라는 감정과도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즉, 처음에 거부당하고 수모를 겪는 건 물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는 나를 힘들게 한 대상에 복수할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으로 금세 대체된다. 심지어 복수하는 상상을 하면 뇌 안의 보상회로로 알려진 중격의지핵이라는 곳이 활성화된다. 어떤 일에 자극을 받아 화를 내는 사람들이 공격적인 모습을 띠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했을 때 향락적인 보상을 받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복수란 실제로 달콤한 행위인 셈이다. 공격성과 쾌락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심리학의 아버지와도 같은 지그문드 프로이트는 공격적으로 행동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복수심이 특유한 방식의 쾌락을 가져온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진 건 최근의 일이다.

이 현상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고자 체스터와 드월 교수는 여러 가지 실험을 했고, 그 결과를 지난달 학술지 “성격과 사회심리”에 게재했다. 실험 참가자들 가운데 일부는 공을 주고받는 컴퓨터 게임에서 고의로 배제되고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느낌을 받은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밀짚 인형에 원하면 침이나 바늘을 꽂을 수 있게 했다. 컴퓨터 게임에서 배제된다고 느낀 참가자들이 인형에 훨씬 많은 침을 찔렀다. 처음에는 온라인상에서 실험을 했고, 사람들을 실험실로 불러 모아서도 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실에서는 가상의 밀짚 인형에 침을 꽂는 대신 참가자들은 아주 듣기 싫은 소리를 상대방에게 내지르는 방식으로 일종의 복수를 할 수 있게 했다. (상대방은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였지만, 참가자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이번에도 게임에서 배제됐다고 느낀 참가자들이 상대방에게 듣기 싫은 소음을 더 오래 틀어주는 것으로 복수했다. 마지막으로 복수심이라는 감정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고자 체스터와 드월은 참가자들에게 감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약을 한 알씩 먹였다. (사실 이 약은 그냥 비타민 보조제로 위약 효과/placebo effect를 내고자 한 실험의 일부였다) 위약 효과는 상당히 강했다. 약을 먹지 않은 참가자들은 다른 실험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복수하려 들었지만, 약을 먹은 참가자들은 복수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 모든 결과를 종합해 내린 결론은 놀랍다. 즉, 복수라는 행위나 복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쾌락을 느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복수에 나서는 이유가 바로 정확히 그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체스터는 결국 복수란 감정을 통제하는 경험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실제 실험을 통해 증명됐는데, 무언가 거부당해 상처받은 실험 참가자에게 복수할 기회가 주어지면 이들은 감정 테스트에서 무언가에 거부당한 적 없는 사람들과 비슷한 점수를 기록했다.

물론 이 실험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아직 복수심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적 효과가 며칠 뒤, 몇 주 뒤에 어떤지에 관해 장기적으로 살펴본 연구는 없다. 아직 논문으로 게재되지 않은 초기 실험 결과를 보면 복수를 계획하는 사람이 얻는 쾌락의 감정은 순간적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많은 감정과 마찬가지로 좋은 건 잠깐인 거죠. 쾌락이 오면 이내 중독처럼 보이기도 하는 감정의 순환이 일어나요. 다음번에는 처음 느꼈던 것보다 부정적인 느낌을 받는 거죠.” 체스터 교수의 설명이다. 아마 쾌락을 좇아 복수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뻔해 보이는 참담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지네딘 지단이 2006년 자신의 선수생활 마지막 월드컵 결승전을 그런 식으로 망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단이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찌와 말다툼을 벌이다 분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박치기를 해버린 장면은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아는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정적 리스트를 만들어 싫어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하나하나 망쳐놓으려 했던 것도 비슷한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결국, 도를 넘은 정치공작과 권모술수를 일삼은 닉슨은 사실상 강제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며 정치 인생을 마무리했다.

BBC는 결론으로, 복수가 바로 폭력의 순환 고리를 연결해주는 단초라고 분명하게 경고한다. 누군가 당신을 괴롭히거나 모욕을 줘서 복수를 계획하게 되면 복수를 상상하는 그 순간은 달콤하지만, 그 쾌락이 오래 지속하길 기대하지는 않아야 한다. 대신 그런 감정이 드는 대단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어쩌면 그 감정 덕분에 우리 선조들은 복수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악순환의 덫에 빠지게 됐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이 생각해야 할 가장 현명한 결론이 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