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해근 목사 (몽고메리교회)
작년 6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결정투표로 시작된 국제사회와 한국의 정치적인 흐름이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관심과 여론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금의 현상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본다면 ‘선택’일 것입니다. ‘떠날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 ‘인용할 것인가? 기각할 것인가?’와 같은 선택 앞에 온 국민들의 마음이 묶여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쪽으로든 선택은 이뤄질 것이고 그 선택을 좋아하는 부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생사를 걸고 거부하려는 부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첨예하고 민감한 시대 앞에서 성경을 통해 지혜를 얻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구약 창세기를 통하여 ‘선택’이 중심 소재로 등장하는 한 사건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의 이야기입니다. 함께 고향 땅을 떠나 낯 설은 곳에 와서 목축을 하며 생활하던 삼촌과 조카 사이에 먹고 사는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하고 갈라서는 이야기가 창세기 13장에 나옵니다. 삼촌인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제안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 결국 조카 롯은 목축하기에 유리한 요단평원을 선택한 후 그 지역으로 이주합니다. 이렇게 시작되었던 조카 롯의 선택은 훗날 소돔이 하나님으로부터 불심판을 받을 때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결과로 끝을 맺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롯의 잘못된 선택’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옳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면 롯에게 선택을 하도록 제안을 했던 사람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이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선택할 수 없는 내용을 놓고 조카 롯에게 선택을 하도록 제안을 한 사람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일 롯이 요단들을 선택하지 않고 그 반대의 선택을 했다면 아브라함이 요단들을 선택했을 것이고 그 역시 잘못된 삶으로 나가게 된다는 논리적인 결과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사건을 통해서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비전과 소명의 발견’이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롯이 요단들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 요단들을 선택한 이후 자신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비전과 소명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요단들을 선택한 후 그곳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소명을 발견하고 그 땅에서 거룩한 소명과 비전의 삶을 살았더라면 결코 롯은 소돔의 멸망 속에 자신이 일구어 놓은 것을 잃어버리는 그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조카 롯이 떠난 후 아브라함은 약간은 허전함 속에 놓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약속을 받고 자신의 미래를 살아가게 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요단들을 선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소돔 땅이 그렇게 허무하게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전과 소명을 품었던 아브라함으로 인해 소돔 땅이 하나님의 윤리가 세워지는 곳으로 바뀌어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소명과 비전을 품은 하나님의 사람의 걸음이고 열매입니다. 다시 우리 시대로 돌아옵니다. ‘인용’혹은 ‘기각’의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용과 기각을 넘어 내 민족과 지구촌을 가슴에 품은 하나님의 비전과 소명의 유무입니다. 이 비전과 소명이 없는 시대와 지도자는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의 마지막은 씁쓸함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택을 아름답고 가치 있게 세워줄 하나님의 비전과 소명의 발견입니다. thechoi82@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