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정치학, 심리적으로 풀어본다!

두려움의 정치학, 심리적으로 풀어본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슬림 7개 국가들에 여행 제한 조치로 인한 후 폭풍이 상당하다. 먼저 해당 무슬림이 과반수가 넘는 국가들에서는 미국인에게 비자와 입국을 불허하고 IS를 격퇴하는 연합전선에서 탈퇴하겠다고 맞불을 놓고 있다. 구글, 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 역시 이번 행정명령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미국 시민들 역시 연대를 통해 미 전역 공항에서 시위와 함께 법원에 타당성 여부를 가리는 소송을 제소했기 때문이다. “복스(Vox)”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무슬림 이민자나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여행 제한 행정명령을 가동시키는 근본적인 이유로 “두려움”을 제시한다. 지난 2015년 파리 테러와 지난해 브뤼셀 테러 이후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경선 후보는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로의 여행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지난해 3월 브뤼셀 테러 이후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의 71%는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하는 정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무슬림 이민자나 시리아 난민을 향한 두려움에 논리적인 근거를 대기는 어렵다. 이민자나 난민에 대한 두려움은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특히나 정치인들의 선동에 쉽게 요동친다. 따라서 심리학적으로 명쾌하게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해 “복스”는 7가지로 분석했다(7 lessons from psychology that explain the irrational fear of outsiders: Fear of refugees and immigrants is emotional. That's what makes it so powerful).]

1. 인류는 오래전부터 외부인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왔다.

이민자가 있는 나라에는 외국인 공포증(xenophobia)이 꼭 있기 마련이다. 우리(us)가 아니라 우리와 다른 남(them, 혹은 저들)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사람에게 좀처럼 믿음을 주지 못하는 건 우리의 본능이기도 하다. 선사시대에는 내 집단의 안전을 지키려면 이러한 본능에 충실해야 했다. 반면 현대 사회에서는 낯선 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배타적인 편견을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실험실에서 사람들을 서로 싸우게 하기는 너무나도 쉽다. 대부분 실험은 먼저 가상의 두 팀을 만든 뒤 사람들을 무작위로 각 팀에 배정한다. “어려울 것 없어요. 기본적으로 상대편과 우리 편이 무언가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는 상황만 만들어주면, 사람들은 마치 원래부터 뇌가 상대편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도록 설계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뉴욕대학교(NYU)의 심리학자 제이 반 바벨은 2013년 이렇게 말했다. 반 바벨은 보통 팀을 홍팀, 청팀 둘로 나누는데, 각 팀에 배정되자마자 실험 참가자들은 편향적인 인식을 드러낸다. 먼저 팀 동료들을 더 좋아하게 되고, 동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나며, 동료들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

2. 두려움은 두려움의 대상을 멀쩡한 인간이 아니라 괴물로 인식하게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시야를 흐린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코딩한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다고 생각해도 된다.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아기를 보면 볼을 살짝 꼬집어주고 싶은 것처럼 낯선 이에게서 위협을 느꼈을 때 위협에 맞서 싸우거나 위협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은 건 본능적인 반응이다. 남을 두려워하면 다른 사람을 인식하는 방식도 변한다. 실험에서 이런 변화는 충격적일 만큼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몇몇 실험에서 심리학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외부인(outsiders)”이 사람의 조건을 얼마나 갖췄는지 평가하게 했는데,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남에게서 평범한 인간성을 잘 보지 못했다.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미나 시카라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과잉 배제 편향(over-exclusion bias)”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누군가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내가 친구라고 여기는 집단의 범위도 좁아진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는 공감할 일도 잘 안 생기고, 그 사람을 도와줄 이유도 점점 줄어든다. 또한, 점점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내 친구인지 아닌지 분명한 딱지를 붙여놓으려는 집착이 강해지기도 한다. “친구를 가르는 경계를 더 명확하게 그리고 싶어지죠. 누구를 신뢰하거나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나누려 할 때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 실수로 호의를 베풀지 않으려는 생각이 강해지거든요. 또한, 자기 집단 구성원들과 더 많이 공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내집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지면 외집단에 대한 두려움도 같이 자라난다.

3. 외부인을 향한 두려움은 외부인을 실제보다 더 위험한 집단으로 인식하게 한다.

2012년 반 바벨과 그의 동료 제니 샤오가 발표한 논문에 이 내용이 잘 정리돼 있다. 실험은 간단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뉴욕에서 멕시코시티까지 직선거리가 얼마나 될지 추정해보라고 했다. 멕시코 이민자들을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들은 멕시코시티가 실제보다 뉴욕에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반바벨은 사람들이 두 나라 사이에 튼튼한 장벽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런 두려움이 빚은 편견이 사라진다는 데이터 연구를 발견했다.

4. 실제 사실이나 통계 수치보다 외부인의 위협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 하나가 사람들의 뇌리에 훨씬 선명하게 각인된다.

우리 뇌는 항상 주변에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지 단 한 순간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민자가 일으킨 범죄, 이민자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내 이웃에 관한 이야기가 유난히 뇌리에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민자들이 새로 정착한 나라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사실관계를 따져볼 겨를도 주지 않고 폭발적으로 퍼져 나가는 이유도 비슷하다. “사례 하나만 있으면 말 그대로 끝이에요. 사람들은 그 사례 하나에 반응해 이내 외부인을 배제하고 적으로 돌리게 되죠. 데이터 분석이나 통계 수치는 추상적이에요.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죠. 반면 두드러지는 사례 하나는 확실하죠.” 주어진 정보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시간을 아끼려는 방향으로의 진화를 통해 형성된 일종의 ‘생각의 지름길’을 휴리스틱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오늘날 휴리스틱 때문에 우리는 엉뚱한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5. 외부인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구구조 변화 곡선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했을 때, 언젠가는 지금의 소수 인종이 다수 인종의 지위를 차지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들려주면 이를 들은 백인 대부분은 다른 인종에 덜 친절한 태도를 보인다. 연구진은 인구구조의 변화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인종 간 일종의 제로섬 게임을 연상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제로섬 게임 아래서는) 소수인종이 늘어난다는 건 다수인종이 그만큼 기득권을 잃는다는 뜻이 된다. 인종적 편견을 연구하는 제니퍼 리치슨은 말한다. “자신은 합리적이고 편향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처럼 소수인종의 성장, 증가가 결국은 위협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인구구조의 변화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이 높아졌다는 최근의 실험 결과도 있다. 이를 두고 모든 백인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백인우월주의나 다른 인종에 대한 적대감을 숨겨둔 채 살아간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대신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정치인이 너무나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두려움은 우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나타나는 반응이자 감정이다. 사람은 일단 감정과 반응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누군가 지금 내가 가진 두려움을, 그 두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을 싹 해결해주겠노라 말하는 사람을 한 번 믿어보게 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6. 두려움에 좀 더 긍정적인 반응을 하도록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난민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과 두려움은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라기보다는 감정적인 반응에 가깝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두려움을 해소하는데 통계 수치나 논리적인 반론은 별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려면 “난민은 위험한 존재”라는 부정적인 마음의 소리를 줄이거나, “난민도 우리랑 다를 바 없는 사람이고 무엇보다 도움의 손길을 보내야 할 대상”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의 소리를 높여야 한다. 시카라는 “심리과학”에 실린 대단히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을 예로 들었다. 우리와 남을 명확히 나눠 결정을 내림으로써 촉발되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하거나 줄이는 방법을 실제로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논문이다. 이스라엘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를 절반으로 나눠 한쪽에는 인지 재해석(cognitive reappraisal)이라는 기술을 가르쳤다. 인지 재해석이란 쉽게 말해 마음속에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르면 감정의 기원과 배경 등을 꼼꼼히 따져본 뒤 이를 물리치는 기술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참가자를 화나게 할 만한 자료를 보여주고, 일주일이 지난 뒤 참가자들에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숙지한 참가자들에게서 적대적인 해결책 대신 외교적인 접근법을 선호한다는 답이 더 많이 나왔다. 미국 정치인들에게 인지 재해석을 가르치는 건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많은 자선단체는 이미 “눈에 띄는 희생자 효과(identifiable victim effect)”를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엄청나게 심각한 통계 수치가 있더라도 숫자의 나열이나 그래프보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데는 특정 피해자의 생생한 사례가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바로 두려움을 촉발하는 사례에 논리를 들이미는 대신 공감의 손길을 내밀도록 하는 또 다른 생생한 사례로 맞서는 것이다. 사진 한 장이나 짧은 이야기가 강력한 파급력을 미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마케팅과 심리를 가르치는 데보라 스몰 교수는 2015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고한 난민,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난민, 우리와 똑같이 테러에 분노하고 희생자를 보며 슬퍼하는 난민의 이야기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습니다.”

7. 우리와 남을 가르는 경계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새로 그을 수 있다.

어디까지는 나와 비슷한 우리, 어디부터는 우리와 다른 남, 이렇게 세상을 인식하는 건 어쩌면 우리 뇌의 본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경계를 어디에 그을지는 본능에 없다. 많은 실험이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나누듯, 실제 사회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기준에 따라 우리가 될 수도 있고 남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과 이미 섞여 살아간다. 2013년 반 바벨은 효과적인 묘책을 하나 실험했다. 홍팀과 청팀을 나눠서 진행하는 실험 중에 갑자기 팀원 몇 명의 팀을 서로 바꿔주었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잠시만요, 죄송해요, 저희가 실수로 몇 분의 팀을 잘못 나눴어요. 사실 ㄱ씨는 홍팀이 아니라 청팀 소속이셨고요, ㄴ씨는 청팀 대신 홍팀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팀을 바꾸면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은 조금 전까지 적으로 돌렸던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인식하고 호의를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물론 실험실에서야 간단한 일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두려움을 비롯한 감정들이 이미 단단히 굳은 상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배타적인 편견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