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당시 교황과 성직자들의 만연한 폐습을 지적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돼 오늘날 개신교의 태동이 됐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 500년을 맞는 현대 교계는 종교개혁 당시의 종교적 병폐를 방불할 만큼 혼란에 빠져 세상 사람들의 걱정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미주 교계에서 사역하고 있는 기독 언론사들은 새롭게 교독문과 기도문을 작성하고 모든 크리스천들이 다시 한 번 성경적으로 돌아가길 소원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종교개혁 발상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본지는 2016년 9월 12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된 ‘종교개혁 발상지 제 3차 학습여행’(주관 크리스천위클리, 발행인 조명환 목사)에 합류했으며 5회에 걸쳐 그 여정을 연재한다. ]
출발 로스앤젤레스 LAX 공항에 모인 33명의 일행은 브리시티(British Airways) 항공에 몸을 싣고 런던으로 향해 10시간 비행 끝에 LHR 공항에 닿았다. 현지 가이드의 환영과 인도 속에 M25번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시내로 들어섰다. 밖은 온통 녹지대를 이뤘다. 산은 아님에도 울창한 나무들이 신선함을 더해 주었다. 도시로 들어선 일행은 ‘선데이 로스트’(얇은 소고기 스테이크)로 점심을 나눈 뒤 런던시내에서 동쪽에 위치한 웨슬리 채플(Wesley Chapel)로 향했다.
웨슬리 채플(Wesley Chapel) 지금도 정기적으로 예배가 드려지고 있는 아담한 이 예배당에서 세계 감리교가 잉태됐다. 이곳은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수상이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채플 뒷마당에 웨슬리의 무덤이 있었고 목사관으로 사용되던 채플 옆 2층 건물은 박물관으로 개조돼 웨슬리의 유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웨슬리의 기도실과 그가 사용하던 성경을 볼 수 있었고,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치며 성공회 사제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야외 설교를 시작하고 말을 타고 전도하러 다녔던 그의 낡은 구두 등에서도 그의 목숨 건 사역을 엿볼 수 있었다. 웨슬리 채플 1층 입구엔 한국 광림교회 설립자인 김선도 목사의 흉상도 세워져 있었다. 웨슬리 채플이 낡고 초라해지는 것을 보고 광림교회가 재정지원을 자청해 채플의 리노베이션(Renovation)에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웨슬리 채플 길 건너엔 번힐 필드란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비국교도들이 묻혀 있는 이 묘지엔 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 여사의 무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도 묻혀있어 눈길을 끌었다.
웨슬리의 회심의 거리 웨슬리의 회심의 거리를 둘러볼 때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이 전해졌다.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 선교활동에 실패한 후 런던에 돌아와 있었다. 하루는 세인트 폴 교회당의 기도회에 참석하고 올더스게잇 거리에 있는 모리비안 신도회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그들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 것을 듣고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회심을 경험하게 됐다고 한다. 그날이 1738년 5월 24일. 이후 웨슬리언들은 이날을 웨슬리 회심일로 기념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매년 5월 마지막 주일을 웨슬리 회심기념주일로 지키고 있다. 그 웨슬리 회심의 거리, 올더스게잇을 방문하고 이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서 있는 런던 박물관내 ‘올더스게잇 플레임(Aldersgate Flame)’ 앞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옥스퍼드대학... Dominus Illuminatio Mea(주님은 나의 빛이다) 이튿날 방문단은 특별히 런던에서 약 2시간 떨어진 옥스퍼드 대학교를 방문했다.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알려진 이 학교의 표어는 Dominus Illuminatio Mea(주님은 나의 빛이다). 이 학교에서 요한과 찰스 웨슬리 형제가 시작한 홀리 클럽(Holy Club)이 발족됐고 유명한 조지 휫필드도 이 대학에 머무는 동안 홀리 클럽에 동참한 것으로 유명했다. 38개 단과대학과 6개의 교육기관으로 연합된 옥스퍼드 대학교는 지금까지 26명의 영국총리를 배출한 학교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이 대학교에서 가장 규모와 역사가 큰 대학은 웨슬리가 나온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 이 칼리지에 있는 예배당에서 요한과 찰스 웨슬리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웨슬리는 이 대학교의 링컨 칼리지에서 펠로우로 사역하기도 했다. 특별히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있는 학생식당, 즉 다이닝 홀(Dining Hall)은 영화 “해리 포터”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졌다. 그 식당 중앙에는 헨리 8세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이 옥스퍼드 대학교를 캐톨릭에서 영국 국교회 소유로 바꿔놓은 장본인이 바로 헨리 8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헨리 8세는 수장령을 발표해 캐톨릭과 결별하고 영국 국교회의 문을 연 군주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웨슬리는 이 옥스퍼드 출신으로 최고의 지성을 가진 지도자였지만 올더스게잇의 회심을 통해 영성을 겸비한 겸손한 지도자가 된 것이다.
대영박물관...후기 인상파 작품 즐비 이어 발길을 돌린 곳은 런던의 구세군 세계본부. 구세군 창시자 윌리암 부스는 요한 웨슬리에게 감화를 받아 구세군을 창립한 사람이다. 참회 왕 에드워드가 세운 웨스트민스터 사원, 메소디스트 센트럴홀, 영국 국회의사당, 런던타워, 영국 박물관, 버킹엄 궁전, 넬슨 제독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는 트라팔가 광장, 그리고 고호와 모네 등 후기인상파 그림들이 즐비한 내셔날 갤러리 등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고 프랑스로 향했다. <이성자 기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