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와 Context의 소통의 측면에서

Text와 Context의 소통의 측면에서

최동진 목사 (샌디에고 반석장로교회)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새해가 밝아온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붙인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으로 촉발된 종교개혁이 벌써 500년이 흐르면서 인류 역사와 문화는 많은 변혁을 가져왔다. 필자가 생각하기로, 진정한 종교개혁이란 당 시대의 역사적 상황, 배경을 반영하는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과 성경적 진리(canonical text)와의 끊임없는 복음적 소통(Gospel communication)을 통하여 규정되어지는 성경적 가치체계라고 전제하고자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종교개혁의 정신을 5 Solas로 요약해볼 수 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예수'(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등이다. 이러한 5 Solas는 철저하게 당시 로마카톨릭의 7성례와 공덕축적설을 통한 행위 구원론의 반작용으로 드러나게 된 신학적 특성들임을 알 수 있다. 당대 로마카톨릭의 그릇된 비성경적 교리들을 통한 교황권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시대적 상황(cultural context)에 대한 성경적 진리(text)로의 개혁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종교개혁이 마틴 루터에게서 갑작스럽게 돌발적으로 95개조의 반박문을 게재하면서 시작된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당시 사회 문화적 배경에는 14-16C에 걸쳐 유럽사회에 편만하게 확장된 르네상스 인문주의(humanism)운동이 자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중세사회의 경제적 기반이 동요되어 중세적 세계관이 붕괴되고, 로마카톨릭에 의지했던 신앙적 기반이 점점 타락하고 부패하여 붕괴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오히려 고전 문학을 탐구하기에 이른다. 특히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으로 그레꼬 로망(Greco-Roman) 시대의 고전문학은 물론 성경을 비롯한 초대 기독교 교부들의 저서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당대 유능한 종교개혁자들인 독일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나 필립 멜랑톤(Philip Melanchthon), 스위스의 쯔빙글리(U.Zwingli), 프랑스의 존 칼빈(John Calvin), 네덜란드의 요한 슈투름(Johannes Sturm)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이러한 북 유럽의 기독교적 인문주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게 되었다. 당시 스콜라 신학의 영향 하에 교황권 확립에 몰두하며 제도화된 비 성경적 교리에 대한 성경적 텍스트(text)를 통해 당시의 콘텍스트(context)를 재해석하고 바른 성경적 대안점을 찾기 위해 소통하면서 종교개혁이라는 놀라운 출발을 맛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살아야 한다"는 칼 바르트의 말대로 당 시대의 역사, 사회, 문화적 상황(context)에 대한 성경적(text) 소통을 강조하는 가운데 개혁운동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시대를 바르게 읽어내고, 성경적 진리로 바르게 해석해, 선지자적 복음을 담대히 선포해 나가지 않으면 자칫 주관주의(subjectivism)에 빠지게 된다. 주관주의라 함은 성경적 진리를 상대화한 좌, 우의 양 극단을 일컫는 종교 심리학적 용어이다. 좌로 보면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자유주의운동이요, 우로 보면 문자적 근본주의에 치중한 세속적 기복주의 운동이나, 경험에 치중하는 수도원적 경건주의 혹은 극단적 신비주의 운동들이다. 이러한 운동들은 성경적 복음 진리를 이성이나 감정, 혹은 경험으로 상대화하기 때문에 기독교 복음과는 상이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마침내는 중세 카톨릭의 전철을 다시 밟게 되는 지름길임을 역사적 교훈으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6세기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은 둘 다 '원천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의 '아드 폰테스'(Ad fonts, ‘원천을 지향함’) 운동이었다는 점에서는 종교개혁이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고 어느 부분에서는 닮았을지 몰라도, 돌아가는 소통의 방법과 방향이 달랐기에 인문주의와 개혁주의는 동반자가 될 수는 없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대 최고의 인문주의자라 할 수 있는 에라스무스와 마틴 루터를 비교해보면 진정한 개혁의 성패가 어디에 달려 있는가를 교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는 소크라테스와 키케로, 제롬 등의 영향을 받은 당대 최고의 인문주의자였다. '인문주의자들의 왕자'라는 칭호를 누릴 정도로 순수한 라틴어 문체를 구사하는 고전문학의 대가였으며, 특히 신약성서를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새롭게 다시 번역했을 정도로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개혁의 인물로 발화되지 못한 이유는 당시 로마카톨릭의 부패한 상황(context)을 텍스트(text)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카톨릭의 제도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다. 반면 루터는 성경적 진리에 충실하기 위해 당시 카톨릭의 그릇된 교리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개혁을 시도하게 된 점에서 에라스무스와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당대의 인문주의자들은 중세의 문제를 부정부패와 매관매직, 음행 등과 같은 도덕적 타락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개혁을 제도개선을 통한 도덕과 윤리 문제의 해결로 간주한 반면에,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은 당대의 윤리적 타락을 현상적인 문제로 보았고, 이보다 더 심각한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진리의 왜곡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단순히 윤리적인 타락상을 개선하는 것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성경의 최고 권위를 회복하여 교황의 권위 위에 세우는 일과 왜곡된 중세 교리를 말씀에 따라 바르게 교정하고 가르치는 일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즉, 텍스트(text)가 주축이 되어 끊임없이 콘텍스트(context)와 소통을 했던 것이다. 기독교 인문주의가 더러워진 '교회를 정화하자!'는 운동이었다면, 종교개혁주의는 쓰러져가는 '교회를 근본에서부터 바르게 세우자!'는 운동이었다. 후자가 전자보다 더 포괄적이었고 근본적이었던 이유는 시대적 문제를 콘텍스트에 머물러 해결하지 않고 텍스트로 들어가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개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윤리적인 문제에만 집착하여 본질적인 성경적 개혁을 소홀히 한다면 진정한 개혁은 요원할 것임을 500년 종교개혁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성경적 진리가 바로 세워진다면, 윤리적 개혁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사실이다. 마치 칭의와 성화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임과 같은 원리이다(Anthony A. Hoekema). 의롭다 칭함 받은 성도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 성화가 시작되어 칭의를 입증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그런 측면에서 종교개혁을 기독교 교리의 개혁뿐만 아니라, 타락한 사회 제도의 개선과 타락한 개인의 도덕성 회복으로 간주한 인물들 가운데에는 스위스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쯔빙글리(Zwingli)와 독일남부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자 부쳐(Bucer) 등이 있다. 쯔빙글리는 개혁의 우선적인 과제를 타락한 교회 제도의 개선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다른 개혁파 종교개혁자들과 같이 교리적 개혁에서부터 시작하여 더불어 사회적, 제도적 개혁의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저들은 우선 바른 성경적 교리를 가르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진리에 입각하여 도덕적, 윤리적 제도개선을 동시에 추진해 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text 중심적인 context와의 소통에 가장 앞장 선 인물이 바로 스위스 제네바의 존 칼빈(John Calvin)과 쯔빙글리의 후계자 불링거(Bullinger)였다. 이들에게 종교개혁은 기독교 교리의 회복과 사회적 제도의 개선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교회와 개인의 삶 전체를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 개념으로의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러한 개혁의 정신이 우리 한국 사회에 가장 시급한 과제라 여겨진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그동안 개인구원에만 치중한 전도와 선교정책이 근시안적으로는 개교회 중심적인 부흥을 이끌어 온 면도 부인할 수 없지만, 개인적 기복주의를 낳았고 사회적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 교회는 성경적 진리에 따른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지속적인 소통과 대안을 찾는 노력이 더한층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성경적 인문주의 영향을 받은 개혁파 종교개혁자들은 이신칭의라는 루터의 가르침을 단순히 바른 기독교 교리의 회복과 교육을 통한 교회 개혁에만 적용하지 않고, 나아가 사회적인 문제의 개선과 개인적인 삶의 성화에도 적용하는 포괄적인 신앙의 개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당시 시대적 상황의 제반 문제점들을 성경적 진리 안으로 끌어들였고 성경적 진리 안에서 부단히 소통하며 윤리적, 도덕적, 제도적 대안들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에도 시대적 상황과 성경과의 끊임없는 소통의 과정에서의 축은 text인 성경이 되어야 진정한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발화점이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실패하면 우리는 다시 시대적 상황(context)에 적절하게 타협하게 되면서 마침내는 진정한 개혁이 아닌 적당한 상황윤리(situational ethic)에 머물게 된다는 점을 교훈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비근한 예로 현대 사회에 만연해 져가는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의 문제이다. 현대교회가 성경적 진리의 문제로 끌고 들어가지 않고 '소수 인권'이라는 상황윤리에 집착하다 보니 마침내는 성경적 진리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여전히 사회적 영향력은 둔화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진정한 개혁의 방향은 성경적 진리에 입각하여 소수 인권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소수인권의 문제(context)로 진리(text)를 거스릴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좀 더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는 종교개혁의 최고의 산물인 '만인제사장론'(Priesthood of all believers)이다. 만인제사장론은 당시 교황과 사제중심적인 문화적 경향을 성경적 진리로 환원시킨 성경적 대안이었다. 이러한 만인제사장론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어오는 카톨릭교회의 사제중심주의에 비해 개신교회의 특징 중의 특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교황권이 중심이 된 '사제주의'에 반한 ‘만인제사장론’이란 구약 시대에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격인 제사장과 희생제물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피로 ‘한번 영원한’(once for all, 히9:12) 속죄를 이루셨기에, 이후 신약 성도들은 더 이상 인간 중보자나 제물이 필요 없이 유일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딤전2:5)의 이름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벧전2:9) 은혜의 보좌 앞에 언제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라는 성경적 사상이다. 이보다 더 놀라운 복음적 메시지는 이 세상에 없다. 이러한 복음적 메시지가 오늘날 개신교회 교리의 중요한 한 축이 되어 개개인의 일상의 삶과 사회를 향한 거룩한 영향력을 끼쳐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에 이르러 이러한 종교개혁의 정신이 많이 후퇴하였고, 또 다시 종교개혁 이전의 상황처럼 목회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500년 전의 종교개혁은 context를 향한 text적 대안의 산물이었음을 상기하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경으로 돌아가 이 시대와 상황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려는(고후10:5) 복음적 소통, 개혁의 몸부림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johndjc@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