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리디머교회를 향한 관심은 지대하다. ‘도시에서는 복음화가 어렵다?’라는 고정관념에 역행하는 이곳을 향한 관심은 세계 각지의 목회자와 선교사들, 평신도 지도자들이 탐방하고 참관하고 리디머교회 목회자인 팀 켈러 목사와 만나 뉴욕이라는 이 도시에서 열매 맺는 비결을 듣고 싶어 한다. 이에 대해 팀 켈러(Tim Keller) 목사의 대답은 동일한 ‘신학적 비전’을 교인들과 같이 나누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배 형식이나 프로그램보다는 리디머 교인들과 함께 뉴욕이라는 지역에서 어떻게 풍성하게 열매 맺을 수 있는지 수많은 시간과 기도와 눈물로 비전을 공유했던 것이다. 복음의 씨앗이 그대로 있지 않고, 도시라는 밭에 심겨지고, 또 그것이 풍성하게 열매 맺기 위해 거름을 주고 물을 주는 그런 수고들을 통해, 이 시대 복음의 영광이 영광스럽고 찬란하게 빛난다. 그래서 켈러 목사는 교인들이 각자만의 개인영성에서 반드시 벗어나 공동체 신앙으로 들어가 참여하는 가운데 복음이 온전하게 개화될 수 있다고 권면한다.]
요즘 교회에서 개인 경건을 강조하지 않는 교회는 거의 없다. 내적 경건과 영적 훈련, 소그룹 교제, 개인 관계 전도는 보통 개인적 영적 수준을 함양하기 위해 이뤄진다. 그런데 오늘 고민해볼 것은 그것으로 ‘충분한 가’ 이다. 개인 경건의 강조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개인 경건의 강조가 자칫 개인주의적 세태 속에서 공동체의 경건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인 영성에 열심인 성도가 때론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신앙을 가진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다양한 훈련의 참여는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된 세태의 왜곡된 표현일 수 있다. 다양한 훈련을 받았다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이 ‘이 정도다’ 하는 훈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에서 하는 봉사조차도 나 개인의 헌신도를 나타내는 척도가 돼 개인 평판이나 성취감을 위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공동체 신앙이 약화되고, 개인 경건만 좇는 세태는 갈수록 심화돼간다.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이 모두 있다. 외부적 요인은 쉽게 알 수 있다. 개인주의적 세태, 다원주의적, 포스트모던 사회의 시대정신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내부적 요인은 좋은 신앙의 메시지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이유 때문이다. 많은 수련회와 부흥회에서 우리는 ‘교회에는 다니고 있으나 신앙이 없는’ 상태에 대해 경계하며, 스스로가 그렇지 않은지 회개하도록 촉구한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는 자칫 교회 공동체로 함께 신앙생활 하는 것의 중요성을 약화시킨다. 교회가 신앙을 점검하지 못하고, 나의 회심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의 성찰로만 오해하게 할 수 있다. 개인주의적 경건이 과도하게 되면 진짜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개인의 경건이 하지 못하는 일을 공동체적 경건이 담당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 신앙은 ‘세상과 구별된’ 선택과 행동을 요청한다. 그런데 다원주의적 사회 속에서 이는 종종 소수인 나 개인의 ‘존중 받을 취향’ 정도로 취급되고, 그것에 안주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과 구별되라는 명령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세상의 것에 역행하는 ‘반문화’다. 세상과 싸우는 영역이다. 이는 공동체 신앙을 통해 경험되는 것이다. 개인도 신앙적 싸움을 계속할 수 있지만, 다원주의 사회의 ‘개인의 취향’ 논리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 공동체의 각 사람에게 공동체 신앙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공동체는 우리의 윤리를 형성하며, 우리의 행동을 지도하는 명시적이며 암묵적인 규칙들을 형성한다. 성경적 윤리명령은 개인보다는 공동체에게 훨씬 많이 주어지고 있다.
그런데 다원화, 도시화된 사회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요즘은 인구 이동성도 많고, 사람들의 노동시간 또한 매우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곳이든 잠시 머문다는 인식이 파다하다. 내 유익을 위해 잠시 머물며 얻을 것을 얻고 ‘충전’되고는 떠나는 곳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머무는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며, 함께 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가장 실제적이고 적극적인 요청 방법은 긍정적인 관점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함께 형성할 공동체와 이에 참여할 개인의 역할에 대한 비전이 제시돼야 머물라는 요청이 힘을 얻는다.
또한 일반적으로 구성되는 4-10명의 소그룹 뿐 아니라 3-40명의 중그룹 공동체도 반드시 추가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소그룹은 신앙의 역동을 끌어내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지만 한 둘이 떠나면 금방 해체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중그룹 단위의 모임과 교제의 장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중규모와 소그룹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주일예배와 훈련에 참여하는 사람의 절반에 못 미친다면 교회는 공동체가 아니라 소비자 문화센터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그룹 예배를 반드시 개인적 ‘강의 수강’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만 은혜 받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적 비전이 제시되고 그것이 공유되며, 각자에게 주어진 말씀의 도전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확인하는 장이 돼야 한다. 이는 교육적 설교에서 전도적 요소를 포함하고, 전도적 설교에서 교육적 요소를 항상 포함하는데서 출발한다.
또한 세례와 성찬의 공동체적 예전을 미리 예고하고 존중하며 준비하게 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례는 공동체의 승인을 받는 과정이며, 성찬은 함께 나누는 것으로, 개인적 예배가 아닌 공동체적 예배의 참 모습을 확인하게 하는 성경적 본질적 요소다. 결국 우리의 교회는 개인의 경건 뿐 아니라 소그룹, 중그룹, 그리고 대그룹의 3중 울타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야만 한다. 각 울타리를 함께 세워가야만 새로 믿는 사람은 그 안에서 유실되지 않으며, 개인과 공동체가 안전히 성장하며 건강히 사역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