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인생은 결국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죽는다. 그 길은 참으로 다양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 오랜 역사를 가슴에 품고 있는 길인 콜로세움에서 라테란 성당에 이르는 그 좁은 길에 서 있다. 이 길을 옛날에는 거룩한 길(Via Sacra)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지금은 Via di San giovanni in Laterano 라는 수수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에 내키는 대로 가만히 있는 길에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고 떼기도 한다. 이 길은 콜로세움에서 라테란 성당까지의 거리가 약 500-600미터 정도 된다. 이 길 한편에 아주 오래된 초대교회 클레멘트 교회가 편안하게 자리하고 있다. 90년경에 로마의 감독으로 클레멘트가 있는데 그가 그리스의 감독 클레멘트(동명이인)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그 편지에 베드로를 언급한 내용이 있어 베드로가 로마에 도착하였음을 개혁자들이 인정하게 되었다. 그 클레멘트가 이곳에서 목회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이 자리는 색다른 사건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이 역사적 사실을 처음 기록한 사람은 당시 교황청 사사로 일했던 아나스타시우스다. 이곳은 최초 남장여자 교황 조안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레오 4세를 이어 영국인 조안이 2년7개월을 교황 직을 수행하던 중 남장여자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성난 시민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녀의 연인은 그를 남장을 하여 그리스로 데려갔고, 탁월한 그녀는 거기서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고 로마로 돌아와서 인문학을 가르쳤고 많은 추종자들을 두게 되었다. 그는 큰 명성을 얻게 되었고, 교황청의 비서를 거쳐 추기경이 되었다. 그 후 만장일치로 교황에 선출될 수 있었다.
그녀는 교황으로서 부활절의 큰 행사를 주관해야 했다. 그 행사는 예식을 마치고 베드로 성당에서 출발하여 콜로세움을 거쳐 라테란 성당으로 가는 순례를 하는 행사였다. 그 화려한 행렬에는 많은 추기경과 주교들, 수도원장 및 신부들,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하는 대단한 퍼레이드이었다. 연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 거룩한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고 많은 시민들은 교황을 향해 손을 흔들고 교황은 그들을 향해 강복의 성호를 긋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교황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갑자기 찾아온 출산을 위한 진통이었다. 조안 교황은 출산 일자를 몰랐거나 잘못 집었던 것이다. 달을 채운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데 체면이나 부끄러움을 차릴 게재가 아니었다. 산모에게 그 순간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교황이라는 권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길거리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남장여자 교황이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이 이 길가에 15세기까지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1510년경에 말틴 루터는 로마를 방문했는데 이런 석상이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세워둔 것에 크게 놀랐다고 했다. 또한 석상은 교황의 망토를 입고 아기와 홀을 들고 있는 조안교황의 형상이었다고 한다. 그 후 교황 식스토 4세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한다.
이 사실에 대해 1414-15년 종교회의가 콘스탄츠에서 열렸는데 개혁자 얀 후스는 조안 교황을 예로 들어 교황청을 통렬하게 비난하였으나 당시 참석했던 종교 지도자들 중 누구한 사람 반박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이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겪게 된 교황청은 이전에 신경 쓰지 않았던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특이한 의자를 만들게 했는데, 그는 조안 교황의 후임자 베네딕트 3세였다. 그가 고안한 의자는 바닥에 커다란 구멍을 뚫은 이상한 의자이었다. 교황으로 선출될 사람의 성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교황 선출 시에 선정된 사람은 이 의자에 앉아 성별을 먼저 검증 받아야 했다. 이 의자에 앉으면 하위 성직자 중 한사람이 의자 밑으로 손을 넣어 남자의 고환을 만져본 후에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한다. “그에게 고환이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성직자들이 주여, 찬미 받으소서라고 화답하고 교황선출을 기쁨으로 진행했다. 나는 이 의자를 보기 위해 라테란 성당으로 찾아갔다. 사전을 찾아보니 진품이 세 개가 있는 데 하나는 불란서의 루불 박물관에, 그리고 또 하나는 바티칸 박물관, 즉 gabinetto delle maschere 방에, 그리고 또 하나가 라테란 성당 정원(Il Chiostreo)에 있다. 그 의자 이름을 La sedia Stercoradia 라고 한다. 그 의자는 화려한 돌로 되어 있었다. 의자 바닥에 구멍에 뚫어져 있는데, 구멍 부분이 깨어져나갔기 때문에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나무의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나무 의자는 가운데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말이다.
조안 교황! 하필 그 장엄한 축제의 퍼레이드에서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역사는 그를 훌륭한 지도자로 기록하였을지도 모르는데.... 여자라는 이름, 그 이름은 역사와 더불어 수많은 차별을 받아야하는 서러운 이름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chiesadiroma@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