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갖춘 역동적 사회, 개인이 더 풍요한 삶 누릴 수 있다

서구에 급부상하는 포퓰리즘을 경계한다(3)

[웨스터민스터신학교 교회사 수업 중 질의응답 시간에 칼 트루먼(Carl R. Trueman) 교수는 한 학생으로부터 오늘날의 교회가 왜 젊은 성도들을 잃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이 거론될 때면 보통 “세상의 유혹” 또는 “교회와 사회의 이질감”과 같은 답변이 가장 빈번히 등장한다. 하지만 칼 트루먼은 이 질문에 대해 가정교육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인식하며 그가 통찰하고 있는 바를 설명하였다(How Skipping Church Affects Your Children: The church is losing its young people because the parents never taught their children that it was important).]

공화당 지도부는 그래도 한동안 경제 쪽을 강조해왔다. 공화당에 돈을 대는 부유한 기부자들이 대부분 리버테리언 성향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화당 지도부와 공화당 지지층의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트럼프의 등장으로 인해 그 격차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대선 후보에까지 오를 수 있던 건 자유무역, 낮은 세금, 규제 완화와 같은 공화당의 전통적인 구호들이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더 이상 먹히지 않으며, 문화적인 공포와 민족주의적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일찌감치 간파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여러 이슈 중 이민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놀랍지 않다. 동성애자 권리와 같은 이슈는 우파들 사이에서도 의견 대립이 심할 정도로 이미 대세가 정해진 사안이다. 반면 이민 문제는 기득권을 적으로 돌리려는 포퓰리스트가 활용하기에 충분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실제로 대량 이민의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포퓰리스트들의 정치적 수사 뒤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다. 물자, 서비스, 정보의 세계화도 그 나름의 상처와 반발을 낳았지만, 사람의 이동은 더 강렬하고 감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 이국의 물건, 사상, 예술, 요리에는 열린 태도를 보였던 서구인들도 외국인들이 직접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현상에는 거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류사 전체를 보면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곳 몇 킬로미터 안에서 평생을 보내던 시대를 벗어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서구가 새롭게 경험하고 있는 낯선 이들의 유입은 기존의 삶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 불안감은 투표소에서 경제적 불평등이나 경기 침체보다 더 확실한 동기로 작용한다. 반면 상황이 다른 일본을 보면, 경기 침체가 25년째 계속되고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지만 포퓰리즘 열병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민자 유입이 적다는 것이 분명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불안감의 정도가 유입되는 이민자 수나 집중도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프랑스인들은 상대적으로 난민과 테러를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고, 독일에서는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대중의 공포와 이민 간의 전반적인 상관관계는 분명하다. 어떤 나라는 기존 정치인들이 대중의 불안에 더 잘 대처했기 때문에 포퓰리즘이 부상할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수많은 이민자와 난민들이 별다른 충돌 없이 잘살고 있는 캐나다가 이 분야의 본보기다.

포퓰리스트들은 종종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날조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멕시코로부터 유입되는 이민자의 수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브렉시트 지지자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통계를 왜곡했다. 물론 사회 문제를 이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현재 유럽으로 들어오는 이민자 수는 기록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불법 이민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문제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정부가 값싼 노동력 때문에, 또는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것처럼 보일까 봐 이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은 면도 있어왔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게 되는 이민은 세계화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낯선 느낌은 곧 공포와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반응이 모두 잘못됐다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사회가 소화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서구 사회는 지나치게 빠른 문화적 변화가 가져오는 위험을 직시하고 대처해야 한다. 이민자 유입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이민자 유형을 가려서 받는 것도 해결책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대책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것은 동화와 통합, 안전망에 대한 투자 확대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 대한 재교육 역시 정부와 민간, 교육기관이 함께 힘을 쏟아야 할 부분이다. 대중이 근거 없는 혐오가 아닌 팩트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도록 이민 문제를 둘러싼 이슈에 대해 잘 홍보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특히 권력을 잡기 위해 대중의 가장 악한 면을 이용하는 대신, 인간의 선한 본능에 호소할 줄 아는 깨어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결론으로,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이민 문제를 넘어서는 날도 자연스레 올 것이다. 현재 이민 문제를 둘러싼 대립은 세대 갈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사람일수록 외국인이나 자신과 다른 집단에 대해 공포심이 덜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갖춘 역동적인 사회에서 개인이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세대, 열린 국경과 연결된 세상을 당연시하는 세대다. 그 미래로 가는 길에 너무 큰 재난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서구 사회의 과제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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