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요소가 투표권자 좌우

서구에 급부상하는 포퓰리즘을 경계한다(2)

[웨스터민스터신학교 교회사 수업 중 질의응답 시간에 칼 트루먼(Carl R. Trueman) 교수는 한 학생으로부터 오늘날의 교회가 왜 젊은 성도들을 잃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이 거론될 때면 보통 “세상의 유혹” 또는 “교회와 사회의 이질감”과 같은 답변이 가장 빈번히 등장한다. 하지만 칼 트루먼은 이 질문에 대해 가정교육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인식하며 그가 통찰하고 있는 바를 설명하였다(How Skipping Church Affects Your Children: The church is losing its young people because the parents never taught their children that it was important).]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왜, 그것도 서구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유럽과 북미의 여러 국가가 처한 경제, 사회, 정치적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경제적 정체이다. 다양한 정책이 시행됐지만 1970년대 이후 성장률이 서서히 주저앉았다.

루치르 샤르마는 저서 “국가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Nations)”에서 이런 거대한 침체를 부른 거대한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인구 문제를 꼽았는데, 바로  미국, 폴란드, 스웨덴, 그리스 등 여러 국가에서 공통으로 출산율이 낮아졌다는 것이 심각한 노동력의 빈곤을 가져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인구는 줄어들고 은퇴자 수는 늘어나게 된 것이다. 경제 성장이 느려진 가운데 세계화라는 새로운 과제도 찾아왔다. 서구의 경제는 비교적 개방돼 있다. 낮아진 국경은 경제 전체에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특정 분야는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으며 기술이 없거나 부족한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일자리를 잃게 됐다. 서구 전체에 영향을 준 또 하나의 트렌드는 정보 혁명이다. 신기술이 생산성을 높이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기술은 세계화 추세를 강화하며 특정 직업 자체를 없애 버렸다.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되면 미국에서는 트럭 운전사 300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마지막 한 가지는 정부 재정이다.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엄청난 정부 부채를 떠안고 있다. 유럽연합(EU)의 GDP 대비 부채율인 67%나 미국의 81%가 정부를 파산에 이르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는 분명 정부의 움직임에 제약을 준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연금과 의료에 더 많은 정부 예산을 쏟아 붓게 되고, 성장을 위한 인프라, 교육, 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인구, 세계화, 기술, 정부 재정 문제에 대한 정답은 투자 확대, 노동자 재교육, 의료 개혁 등을 차근차근 실시해가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극적인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들에게 이렇게 점진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큰 좌절감을 안겨준다. 미국 등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필수요소인 견제와 균형을 집어치우고 화끈한 결단을 내려줄 지도자들이 부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글로벌 경제의 영향력을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 세계 각국의 경제 정책은 지난 수십 년간 크게 바뀌었다. 1960년대에는 좌파와 우파가 추구하는 경제 정책이 서로 크게 달랐다. 좌파는 모든 산업 부문을 국영화하고자 했고, 우파는 정부의 간섭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했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과 함께 모든 형태의 사회주의가 신뢰를 잃고, 세계 각국의 좌파 정당은 중도 방향으로 좌표를 옮기기 시작한다. 우파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여전히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이론적인 차원에서의 주장이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를 겪고 난 후, 좌우는 모두 어느 정도의 혼합 경제를 받아들이며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가 약속하는 경제 정책은 인프라 지출 확대, 높은 관세, 워킹맘에 대한 보호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말로는 규제와 세금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클린턴 쪽의 경제 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실제로 인프라 투자를 클린턴의 두 배로 하겠다며 큰소리를 친 적도 있다. 이와 같은 좌, 우파 경제 정책의 동화 현상으로 인해 오늘날 좌우 간의 중요한 차이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 부문에서 발생하게 되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그 외 여러 포퓰리스트 정치인을 지지한 유권자들에 대한 분석을 살펴보면, 전문가들은 이들의 투표 동기를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가치관에서 찾고 있다.

잉글하트와 노리스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에 시작됐다. 젊은 사람들이 물질주의적 정치관에서 벗어나 자기표현, 젠더나 인종, 환경과 같은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들은 권위와 기득권에 도전해 규범을 바꾸고 사회 변화를 끌어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도 있었다. 구세대, 특히 남성들은 이런 변화를 지금까지 자신들이 구축하고 지켜온 문명과 가치관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사회문화적 변화를 막아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표를 주기 시작했다.

이런 반작용으로 유럽에서는 새로운 정당이 탄생했고, 미국에서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경제 정책을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문화적인 요소를 기준으로 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화당 내에서는 문화적, 경제적 보수주의자들과 외교 분야의 매파들이 수십 년간 불편한 동거를 이어왔다. 그러는 동안 민주당은 빌 클린턴 하에서 우클릭을 계속하며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노동 계급의 백인들은 코스모폴리턴적인 민주당의 분위기에 소외감을 느꼈고, 이른바 3G 문제(종교, 총, 동성애자)에 있어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공화당에서 안식을 찾게 된다.

  오바마 정부 초기에 발생한 우파의 풀뿌리 운동인 티파티는 처음에 정부의 금융 위기 구제책에 대한 반발로 여겨졌으나, 수백 명의 티파티 지지자를 심층 인터뷰한 연구팀은 티파티 운동의 핵심 동력 역시 문화적인 요소였다고 결론 내렸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강렬한 적대심에서도 드러나듯 인종이라는 요소도 분리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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