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수 목사 (남가주사랑의교회)
젊었을 때는 양식과 일식을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한식이 더 좋아집니다. 그것도 잘 차린 식당의 요리가 아니라 아내가 차려주는 소박한 집밥이 좋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구운 김으로 싸서 맛있게 익은 김치와 함께 먹는 게 최고로 맛있습니다. 아내는 나이가 들어가며 예전보다 밥하는 것을 덜 즐겨하는 것 같은데 저는 점점 더 집밥이 좋습니다. 특히 아내가 여러 가지 일로 바쁜 날에도 서둘러 집에 들어와서 저를 위해 상을 차려야 할 때는 조금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세요. 저는 하루 삼시 세 때를 다 집에서 챙겨 먹는 ‘삼식이’는 절대로 아닙니다. 집밥을 먹을 때 자주 찾는 음식은 당연히 김치입니다. 저는 요즘 김치의 맛에 매료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화 기능이 약해서 매운 김치를 물에 씻어 먹어야 했던 제가 요즘은 매운 김치도 곧잘 먹습니다. 매운맛이 중독성이 있는지 김치를 더 많이 먹게 됩니다.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거나, 몸이 아프거나, 혹은 ‘고추를 먹지 못하면 혁명도 못한다’고 말한 중국의 마오쩌둥의 말을 빌려서 ‘김치를 먹지 못하면 큰일을 못한다’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 마니아는 아니지만 점점 김치가 당기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떤 김치 전문가에 의하면 김치는 적어도 다섯 번 죽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배추를 밭에서 뽑을 때 죽고, 배추를 반으로 쪼갤 때 죽고, 배추를 소금물에 절일 때 죽고, 배추를 매운 고춧가루와 새우젓으로 양념할 때 죽고, 그리고 배추를 김치 냉장고 넣거나 김장독에 담아 땅속에 묻을 때 죽는다고 합니다. 또 어떤 김치 전문가는 두 가지를 더 추가합니다. 김장독에서 김치를 꺼내 칼로 조각조각 썰 때 죽고 그리고 김치가 사람의 입속에 아삭아삭 씹히면서 죽는다고 합니다. 김치는 적어도 5-7번의 죽음을 통해 제 맛을 냅니다. 죽음을 통과한 김치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세계에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김치를 밥에 얹어 먹으며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치와 신앙이 어떤 면에서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치가 죽어야 제 맛을 내는 것 같이 사람도 제대로 죽어야 신앙인의 맛을 내는 것 같습니다.
나의 믿음을 김치와 비교해봅니다. 나는 매일 밥상에 올라와도 질리지 않는 편안한 김치 같은 사람인가? 나는 죽고 또 죽고 새롭게 태어난 김치같이 ‘자아’가 죽어 새롭게 변화되었는가? 나는 오래 인내하고 숙성하여 깊은 맛을 내는 김치 같은 성숙한 신앙인인가? 나는 양념을 받아들여 간이 골고루 배어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김치같이 조화롭고 화평케 하는 사람인가? 오늘 저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밥 위에 적당하게 익어서 감칠 맛 나는 김치를 올려 먹으며 새롭게 결심 합니다. 나의 자아가 죽고 또 죽고, 모든 과정을 인내하고 성숙하여 모두에게 김치같이 유익하고 감칠맛 나는 인생이 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