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종교개혁의 첫걸음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한글성경을 가지고 읽으면서 탁월한 인쇄술과 제본에 감동을 한다. 한국이 여러 가지 분야에서 최고이지만 인쇄술 역시 최고가 아닐까. 성서공회의 통계를 보니 2014년 한 해에만 119개국에 235개 언어로 총 689만여 부를 세계 교회에 보급하였다. 1973년부터 2015년까지 42년간 총 1억5,100만여 부를 전 세계인들에게 공급하였다니 놀랍다. 종이질도 뛰어나다. 이전의 성경은 이쪽에서 은혜가 되는 말씀에 줄을 치면 반대쪽에도 잉크가 묻어났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거의 없다. 책의 어디를 펼 때에도 억지로 꺾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성경마다 다르겠지만 글씨체들 역시 맘에 든다. 심지어 새로 구입한 성경에는 궁금증을 덜만한 안내 글과 사진, 지도까지 곁들여져서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찬송가까지 다 합쳐야 웬만한 소설 두께밖에 안 되고 최고 품질의 가죽 껍데기이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번역본도 나왔다. 요즘 성경이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쉬운 성경”을 주저 없이 권한다. 어떤 분에게 그 성경을 권했더니 성경이 마치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힌다고 한다. 이렇게 대단한 인쇄술로 만들어지고 이렇게 많은 종류의 성경책을 가지고도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 교회는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유는 간단하다. 펼쳐서 읽지 않으니! 어떤 책을 읽다가 오늘의 성경이 우리 손에 들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는지를 보면서 성경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종교개혁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영국의 윌리암 틴데일(1494–1936)이 살았던 1500년대 초는 성경을 소수의 성직자만 가질 수 있었고 그것도 라틴어로 된 불가타역이 전부였다. 당연히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은 성경에 무지하였고 성경을 번역하는 자들은 화형에 처하는 것이 당시의 법이었다. 그러니 그 시대의 무지몽매가 얼마나 극에 달하였는지는 불 보듯 훤하다. 그가 1522년에 성경을 헬라어와 히브리어 사본들을 영어로 번역하기로 작정하였을 때 한 동료 성직자들은 이렇게 말렸다. “교황의 법보다 차라리 하나님의 법이 없는 게 사람들에게 더 나을지도 모르오.” 얼마나 교황의 악한 권한이 막대하였는지 상상이 간다. 그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이 내 목숨을 살려주신다면 나는 여러 해가 지나기 전에 당신보다 쟁기를 모는 소년이 성경을 더 많이 알 수 있게 하겠소.” 그는 1526년 독일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고국에 밀반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동포들에게 성경을 보급한 죄로 수배자가 되었다. 10년간의 수색과 음모 끝에 체포된 그는 로마제국의 법정에서 이단 죄로 선고받았다. 그는 교수형에 처해졌고 목이 잘린 그의 시신은 화형용 기둥에 묶여져서 다시 불태워졌으며 유골들을 흩어버렸다. 로마교회는 그렇게도 성경을 교인들의 손에 넘겨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 안에 폭발적인 성장을 하였다. 그 배경에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선교를 시작하기 3년 전에 이미 존 로스 목사가 중국에서 번역한 신약성경이 조선 민중들의 손에 들려 있었음을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 로스 목사는 30세에 중국에 도착해 이듬해 아내와 사별하는 슬픔을 겪었다. 그러면서도 조선 땅에서 있었던 6년 전에 순교했던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에 도전받아 그 땅의 복음화를 위해 성경을 번역하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1878년 봄에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을 번역하였다. 성경을 번역하는 사역에 동참했던 제임스 게일 선교사는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 파나마 운하 하나를 파는 일처럼 힘들다고 토로했던 적이 있다. 하긴 루터 역시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며 성경번역이 엄청나게 힘들다고 호소했었다. 우리가 지금 들고 있는 성경은 이런 선진들의 눈물과 피와 땀의 결정체다.

이번 주일은 499주년을 맞는 종교개혁주일이다. 개혁가들은 성도들에게 성경을 직접 읽는 기쁨과 감격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은 성경을 읽고 연구할 무한대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교인들은 막상 성경을 읽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교회들이 스크린에 성경을 띄워주기 때문에 성경을 들고 교회당에 갈 필요조차 없다. 성경에 무식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직분을 차지하고 앉아 비성경적으로 교회의 일들을 결정한다.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성경적 가치관에 의해 세상을 살라고 하였지만 성경에 무식하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가 난망하다! 로스 목사와 함께 성경을 번역한 매킨타이어 선교사는 “그 어떤 것도 한글성경 사업에서 나를 떼어놓지 못할 것이다. 이제 나의 모든 영혼은 그 안에 있다”고 할 정도로 성경번역 사업에 열정을 다 바쳤다. 이렇게 소중한 자산을 가지고 있는 한국교회가 회복되는 길은 성경에 있다. 성경을 펼쳐서 다시 읽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그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기 시작한다면 아직 한국교회는 늦지 않았다! 제 2의 종교개혁은 교인들이 성경을 다시 펼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danielkmi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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