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선생님이 가르치실 때에…

예수선생님이 가르치실 때에…

이 희 갑 목사 (아주사퍼시픽 대학교 교수)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와서 질문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는 주님을 선생님으로 불렀지만 그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진정 모르는 것을 겸손히 묻는 자세가 아니라 교사를 떠보는 생각으로 하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전문적인 율법선생이었기에 율법에 관한한 모르는 게 없었다. 반면 그가 생각하기에 주님은 나사렛에서 태어난 어수룩한 촌사람, 그리고 학교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무식한 자로 어찌 율법을 알 수 있겠는가하는 오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게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며 그럴듯한 질문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 태도를 주님이 모르실리 없다. 그런 주님이 오히려 되묻는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왜 주님은 되물으셨을까? 교육의 효과는 남이 가르쳐주는 것보다 스스로 발견하는데 있다. 남이 지적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율법을 잘 알고 있는 그 사람은 자기 과시를 위한 좋은 기회가 온 것으로 알고 신명기 6:5, 레위기 19:18 말씀을 줄줄이 불어댔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의기양양하고 있던 그를 주님이 칭찬하신다. “네 대답이 옳도다.” 그가 우쭐하고 있을 때, 그러나, 주님은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신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무슨 말인가? 말씀을 암송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아는데 그치지 말고 적용하라는 것이다. 말씀은 실행하여야 하고 진리는 구체화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모세오경을 달달 외고 있어도 그것이 삶속에 녹아들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주님이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신 이유가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한다”(마23:3). 주님에게 한방 당했다고 생각한 그 율법사가 다시 질문한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세상에 어리석거나 잘못된 질문은 없다. 다만 이 경우처럼 질문자의 잘못된 의도가 있다면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율법사가 질문한 것은 그가 이웃의 개념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질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이웃을 너무나 잘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다.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눅18:9-14)를 기억하는가?

바리새인은 그의 옳음을 자랑하고 있다. “하나님, 나는 이웃을 너무 사랑하여 토색, 불의, 간음하지 아니한 사람이고 이틀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림으로 뭇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나를 축복하여 주심이 마땅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사람이 바로 이런 종류의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입니다.” 혹은 “하나님이 나의 의로운 삶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옳다는 사람이다. 나 중심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며 정죄한다.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주님께 질문하기 전에 이 율법사는 대답을 가지고 있다. 이웃이란 동료 유대인을 말하는 것임을 그는 오래전부터 배워왔기 때문이다. 사실 유대인들은 이웃이란 오로지 유대인만을 의미했고 그들은 조상들로부터 그렇게 가르침을 받고 자라왔다. 그런데 주님은 달랐다. 이웃의 개념이 확장되어야 함을 그는 가르치고 싶었다. 바로 그런 교육이 일어나는 시점을 교육학에서는 ‘가르칠만한 순간’ (teachable moment)이라고 부른다. 사도바울이 아덴에서 행한 설교를 기억하는가? 그는 그 도시 어디서나 세워져 있는 우상을 기념하는 무수한 단을 보았다. 심지어 그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다(행17:23). 바로 이 알지 못하는 신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전략이 바로 teachable moment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학습의 기회를 포착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선생님이셨다. 친숙한 개념을 통하여 한 단계 높은 개념을 학습시키는 것! 바로 그것이 주님이 행하신 교육의 첫 번째 성공 요소이다. 이웃이라는 개념(그 율법사가 이미 알고 있었던)을 통하여 주님은 그가 원하시는 새로운 이웃이라는 개념을 가르치신 것이다. 주님이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을까? 왜 이 이야기에서 사마리아 사람이 영웅으로 등장하게 되는가?

주님의 교육방법

이스라엘 역사를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솔로몬 사후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양분되고 불신앙이 편만한 북이스라엘은 주전 724년 앗수르에 정복당하여 멸망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북쪽 땅 역시 이방인들이 강제로 이주하여 살게 된다. 그래서 남쪽 유다사람들이 보기에는 사마리아(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 사람들은 같은 믿음을 가진 동족으로 간주하지 아니하였고 유다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 간의 미움과 갈등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수준을 훨씬 넘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가장 일반적인 기도가 “주님 사마리아인들에게 부활이 없게 하소서’라는 기도였을까?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인 역사가 요세프스는 두 민족 간의 갈등을 상징하는 두 사건을 그의 역사책에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는 AD6-9년경, 몇 명의 사마리아인들이 비밀리에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느라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왔다가 발각되어 잡히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이들을 죽이고 성전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의 뼈를 갈아 뿌렸다고 한다. 두 번째 사건은 AD51년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러 멀리서 온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마을을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오려다가 그곳 사마리아 사람들에 잡혀서 죽임을 당하였는데 이를 안 유대인들이 당시 로마 군인들에게 신고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게 되자 분노한 유대인들이 그 사마리아로 쳐들어가 사마리아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키고 마을을 불태웠다고 한다. 이러한 두 민족 간 극심한 분노와 적대감정을 주님은 알고 있었을 터, 바로 여기에서 주님은 이웃에 대한 개념을 확실하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의 교육방법은 어떤 것이었을까? 주님은 직접 해답을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절대로 정답을 바로 말하는 저급한 교육방법을 택하지 않으셨다. 대신 주님은 이야기, 우화, 은유적 방법을 통해 가르치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주님은 학습자가 문제를 스스로 파악하고 문제 해결의 방법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흔히 이야기하는 발견학습은 이미 주님이 성공적으로 사용하신 것이다. 아마도 주님은 이렇게 시작하셨을지 모른다. “내가 이야기하나 해줄까? 잘 들어봐. 어떤 유대인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었지. 근데 제사장이 지나가시는 거야. 아 이제 살았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거들떠보기도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겠어? 너무 실망하고 있는데 조금 후 레위인이 오는 것을 보았지. 너무 기뻐서 이제는 살았구나하고 생각했지. 한데 웬걸, 이사람 역시 본체만체 그냥 저쪽으로 비켜서 종종걸음으로 사라져 버렸지.” 주님은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배워왔던 동료 유대인들이라는 틀을 깨버리고 싶으셨다. 제사장은 유대인들의 최고의 리더 아닌가? 레위인들은 제사장을 도와 성전 안에서 예배 준비를 하고 백성들을 살펴야 하는 지도자 아닌가? 모범을 보여야 할 그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배척시키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당시 율법사가 고개를 갸우뚱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포인트는 이제부터이다. “그런데 말이야, 저기 사마리아 사람이 오는 거야. 그 사람이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보더니 불쌍한 마음이 들어 치료를 해주는 게 아니겠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 율법사의 반응이 어떨 것 같은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는 펄쩍 뛰면서 주님의 이야기를 가로막았을지도 모른다. “예수님 잠깐만요, 누가 그랬다고요? 사마리아인이 그랬다고요? 아니요. 천만에, 사마리아인은 절대 그럴 수 없어요. 그 개돼지도 못한 그들이 유대인을 돕는다고요? 그건 서쪽에서 해가 뜨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맙소사, 절대로 그럴 일 없어요…” 왜 이런 반응이 나올까? 그는 율법사요 율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며 율법은 오직 동료 유대인만이 그들의 이웃임을 익히 배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주님은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하셨을까? “내 얘기 아직 안 끝났어. 잘 들어봐, 그런데 그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을 데리고 여관까지 가서 여관주인에게 잘 돌봐주라고 부탁하는 것 아니겠어? 돈이 더 들면 나중에 내가 지불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마치신 주님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일까?” 이 질문이 주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이를 교육학에서는 결정적인 질문 (essential question)이라고 부른다. 그 질문을 듣고 이 율법사는 무어라 응답했을까? 아마도 그는 자기가 배워왔던 과거의 지식과 지금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새로운 개념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교육이 바로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 지식, 패러다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 교육심리학자인 Jean Piaget는 이를 disequilibrium의 과정이라고 이름 지었다. 다시 말하면 교육은 익숙했던 것(equilibrium)을 잠시 혼란에 빠뜨려(disequilibrium) 새로운 수준으로 한 단계 높이는 과정이라고. 그 율법사는 과거에 오직 유대인만이 그의 이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하여 그가 미워했고 싫어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이웃이 될 수 있음을 마침내 통찰할 수 있었다. 새로운 학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누가 이웃이라고 물었을 때 주님이 자신의 답(사마리아인이 너의 이웃이라고)을 바로 알려 주었더라면 이러한 극적인 교육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이러한 예화, 이야기, 우화 등을 통하여 율법사는 자기가 스스로 통찰하였고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주님은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깨달아 알게 되었다면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교육은 배운 바를 실행에 옮기는데 그 생명이 있다.

4단계 교육방법 요약

필자가 성경을 읽을수록 느껴지는 것이 주님은 위대한 교육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누구와도 대화하셨고 어떤 상황이든 편안하셨다. 창녀도, 어린 아이도, 세리도, 장애인도 모두 환영하셨고 가장 쉽게 가장 명확하게 교육시키셨다. 앞으로 샬롬에 기반한 주님의 교육방법을 구체적으로 나눌 것이다. 다만 오늘은 주님이 택하신 네 단계의 교육방법론을 교회교육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설명하면서 글을 마치도록 한다.

제 1단계: teachable moment를 확실히 붙잡으면서 학습자의 학습에 대한 내적 자각이 생기게 할 것. 2단계: 핵심적인 질문(critical question)을 통하여 학습자의 생각, 지식, 태도를 점검하고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할 것. 3단계: 우화, 이야기, 예화 등 학습자가 잘 이해하는 상황을 통하여 학습자가 문제를 통찰하고 해결안을 스스로 찾도록 할 것. 4단계: 배운 내용을 반드시 실천에 옮기도록 동기부여를 시킬 것. hlee0414@gmail.com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