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주 로마린다대학 아동병원의 외과과장인 레너드 베일리 박사는 얼마 전 74세 생일을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매일 아침 6시 30분 출근해 주 60시간씩 일한다. 선구적인 심장 수술 전문의인 그는 ‘유아 대 유아’ 심장 이식에 세계 최초로 성공한 뒤 갓난아기를 위해 수백 건의 이식 수술을 집도했다. 베일리 박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식 수술이 있는 주는 80-90시간 일하기도 하지만 하루 2건 이상 수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처럼 강도 높고 쉴틈 없는 업무에도 은퇴할 생각은 없다. “일을 그만둘 이유가 없다.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새로운 문제를 다루면 뇌세포가 활성화돼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진다.” 로스앤젤레스에서 100㎞ 정도 떨어진 동쪽의 고원 사막지대에 위치한 로마린다는 미국의 ‘장수 수도’로 잘 알려졌다. 이곳에선 베일리 박사가 그리 특이한 축에 들지도 않는다. 로마린다의 주민 다수는 주변 도시 사람들보다 수명이 약 10년 더 길다. 70대 중 다수는 일반적으로 30-40대에 적합한 일을 한다. 이곳 상황이 예외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미국 전역에서 갈수록 흔해지는 현상이다(MORE SENIOR AMERICANS ARE WORKING PAST RETIREMENT, WILLINGLY).]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가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은퇴 연령을 넘은 미국인 중 계속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2000년 12.8%에서 올해 18.8%로 크게 늘었다. 65-69세 미국인의 약 3분의 1, 70-74세의 5분의 1, 75세 이상의 8.4%가 여전히 유급으로 일한다. 이런 추세를 이끄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그중 일부는 금전적인 이유다. 2008년의 경기 대침체로 은퇴 저축이 대부분 고갈되고 고정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인이 크게 줄면서 그들 대다수는 계속 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베일리 박사처럼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일손을 놓을 생각이 없는 전문직 종사자도 많다. LA 소재 밀켄 연구소의 폴 어빙 대표는 “고령화되는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는 레크리에이션 센터와 골프장을 갖춘 해변 실버타운에 사는 것 같은 전통적인 은퇴를 바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더 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은퇴라는 개념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미국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구 구성의 변화를 겪으면서 은퇴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20세기 전엔 수명 50세를 넘기는 미국인이 절반도 안 됐다. 그러나 21세기 중반이 되면 65세 이상인 미국인이 8,800만 명 이상이 된다(미국정부 추정치). 그러면서 앞으로 그들을 돌보는 데 드는 비용이 사회 자본을 고갈시키고 의료 시스템을 파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실제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국가들은 경제난에 대비해야 한다. 활발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에 필요한 젊은 근로자는 줄고 연금과 의료비가 치솟기 때문이다(일본이 대표적으로, 일본 인구의 약 40%는 2060년이 되면 65세 이상이 된다). 그러면서 부족한 자원을 대량 소모하는 탐욕스런 노년층의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그런 이야기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고 본다. 요즘의 고령자 중 다수는 이전 세대보다 더 건강하고 학력과 생산성이 높으며, 계속 일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일부 고용주는 나이 많은 근로자의 업무 능력 약화, 의료비 상승, 새로운 기술·도구 사용 능력의 미흡을 우려하지만 몇몇 기업은 고령 인력을 활용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는다. 그들은 경험 많은 베테랑과 젊은 직원을 짝지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부터 유연 근무나 시간제 근무를 허용하는 단계적 은퇴 계획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이런 프로그램으로 회사들은 60대 근로자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들은 동료의식과 괜찮은 급여를 그리워하지만 정식 직원의 강도 높은 업무는 원치 않는다. 기업들이 그들을 활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나이 많은 직원은 애사심이 강해 젊은 직원보다 더 오래 한 직장에 머문다. 그에 따라 이직률이 줄면서 신규 채용과 신입 직원의 훈련비용이 줄어든다. 또 나이 많은 직원은 경험과 인맥, 기술에서 상당히 유리하다. 따라서 젊은 직원보다 더 빨리 업무를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며 업계 사정을 잘 알아 문제가 생길 때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세계적인 타이어 제조업체 미슐랭의 미국 본부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그린빌에 있다. 그곳 직원 중에 특히 고령자가 많다. 직원 1만6000명 중 약 40%가 50세 이상이며 그들 대다수는 그곳에서 20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 전미퇴직자협회(AARP)가 고령자를 위한 최고의 직장 중 하나로 꼽는 미슐랭은 직원의 지속적인 근무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유연 근무, 압축 근무,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 근무 시간을 줄여 인건비를 낮추는 대신 고용을 유지하는 제도), 재택근무, 단계별 은퇴 프로그램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은퇴를 선택하는 직원도 회사로부터 임시 업무, 컨설팅 또는 하청 업무, 심지어 정식 직원까지 다양한 고용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의 받는다. 미국 미슐랭의 인사 담당 수석부사장 데이비드 스태퍼드는 “사람들이 더 적게 일하고 좀 더 유연한 근무를 원할 뿐 완전히 그만두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미슐랭은 사무직 전문 인력만이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숙련기술직 인력(자동화 전문가, 전기 기술자, 기술 지원팀 등)도 오래 근무해주기를 원한다. 스태퍼드 부사장은 “그런 직종은 전문 기술을 갖춘 인력이 적어 충원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요즘 제조업체는 전부 그런 인력 부족에 허덕인다.” 텍사스 주 휴스턴의 존슨 스페이스센터 건너편에 위치한 항공우주 기술업체 MEI 테크놀로지는 일이 몰릴 때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맡을 수 있는 은퇴자를 구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엔지니어 출신과 군에서 퇴역한 사람들이 대상이다. MEI 테크놀로지의 인사 담당 이사 샌드라 스탠퍼드는 “업무량이 때에 따라 들쭉날쭉해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려면 그들 같은 예비 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젊은이 지향적인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몇몇 업체는 나이 많은 인력을 유치하고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있는 온라인 금융정보 매체 너드월릿에선 기사 작성·편집 인력의 약 3분의 1이 50세 이상이다. 이 회사의 콘텐트 담당 이사 매기 릉은 “우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최고의 인재를 원하며 철저한 검증을 통해 채용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편집팀 90명을 채용하기 위해 이력서 8000장 이상을 검토했다. 너드월릿은 가족을 데리고 집값 비싼 회사 부근으로 이주하길 원치 않는 전문 인력에겐 재택근무를 허용한다.
릉 이사는 노련한 60대 중반의 자동차 전문 편집자를 채용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고 밝혔다. 자동차 전문 기자로 20년 이상 활동했던 필 리드는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에서 재택근무를 한다. 그는 편집회의를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본사에 갔을 때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다고 말했다. 본사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화상회의를 하는 그는 “나 스스로 나이를 의식할 때가 많았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40-50대 편집자도 꽤 많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편해졌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가 많은 그런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원래 난 2년 뒤 은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직장과 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게 더 좋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은퇴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