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로마시대의 팍스 로마나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요? 그리고 황제를 신으로 부르는 황제 숭배는 언제 시작되었는지요? 그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토랜스에서 권 권사
A: 로마제국의 첫 번째 황제는 시저입니다. 그런데 시저가 자기가 가장 믿었던 부하 부루터스에게 암살당하고, 시저의 양아들들인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두 사람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싸울 때 로마제국 전체가 둘로 갈라져 20년 동안 싸우게 됩니다.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와 연합한 안토니우스를 악티움 해전에서 제압을 하고 20년간 반란의 남은 도당들을 완전히 제압을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로 금의환향을 했습니다. 그때 외친 것이 바로 Pax Romana(강력한 로마)입니다. 힘에 의한 평화입니다. 실제로 그 이후 로마는 200년간 ‘팍스 로마나’로 불리는 평화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도로는 시원하게 잘 포장되었고, 누구나 그 도로 위를 산적의 위험 없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지중해의 바닷길 역시 악천 후 외에는 항해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지중해는 해적이 활보하는 곳이었지만, 팍스 로마나 시대에는 상업이 번성해 육로와 해로를 가릴 것 없이 늘 장사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시대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통일성’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언어가 통일되고 화폐가 통일되고 경제단위가 통일되었습니다. 로마는 공권력의 무리한 사용 없이 제국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원로원에서는 옥타비아누스의 공을 높이 사 새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 이름이 “아우구스투스”입니다. 이 아우구스투스는 “신”이란 뜻입니다. 그 때부터 로마 황제숭배의 기초가 시작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1절을 보면 예수님이 탄생할 때가 바로 이 가이사 아우구스투스 시대입니다. 황제는 죽은 후에도 로마제국을 지키는 수호신들의 목록에 추가되었고, 시민들은 신전에서 죽은 황제의 이름으로 향불을 피우며 제국의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이러한 황제 숭배를 로마 당국자들은 시민의 통일성과 충성심을 굳게 다지는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황제의 상 앞에서 향불을 피우는 것은 제국의 번영을 위해서만 행해졌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반역’ 내지는 최소한 ‘불충’과 ‘애국심 부족’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 10명 가운데 황제 숭배를 가장 심하게 강요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바로 도미티안 황제입니다. 이 황제는 주후 70년경에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멸망시킨 로마의 디도장군의 동생입니다. 도미티안은 티투스 황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자 대단히 잔인했습니다. 그는 반 기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황제를 “주 우리 하나님”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했습니다. 이 황제숭배에 제일 반대한 사람이 기독교인들이기에 그는 기독교를 엄청나게 핍박하였습니다.
네로 치하에서의 기독교 박해는 로마 시에만 국한되었던 것과 달리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의 박해는 멀리 소아시아 지방에까지 미쳤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은 토굴로 산으로 박해를 피해 숨었습니다. 박해의 여파로 사도 요한은 잡혀 밧모 섬에 유배되었고, 이런 배경에서 씌어진 서신이 요한계시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