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 인생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명품 조연배우 오달수. 잘 생기지 못한 얼굴에 큰 머리, 좁은 어깨, 그리고 안면에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점으로 한 번 보면 누구나 잊혀 지지 않는 사람. 누가 보아도 전형적인 루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 이것이 영화배우 오달수에게 따라붙은 설명이다. 20대부터 연극배우로만 여기저기 굴러다니다가 우연한 기회에 영화 ‘올드보이’에 출연해서 그때부터 연기자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우스꽝스러운 외모 덕분에 주로 하류 인생과 주변부 인생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영화 캐스팅 1순위의 배우이고, 조연으로만 출연해서 달성한 누적관객이 1억5천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그가 조연으로 출연하기만 하면 영화가 재미있는 영화,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가 된다. 그래서 그는 영화에 없어서는 안 되는 약방의 감초라 할 수 있다. 아니, 그가 출연하는 영화마다 대박을 치는 것을 보면 약방의 산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영화에서 조연이란 주연이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그의 성공은 조연으로서 철저하게 주연을 주연되게 만드는 프로의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내가 잘 나야 한다. 유명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보다 낮아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할 수만 있다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도 하고 싶어 한다. 최초의 인간도 하나님보다 높아지려 하다가 패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러한 교만은 결국 나도 망하고 내가 속한 공동체도 망하게 하는 패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욕구가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의 본질은 겸손에 있다. 예수는 하늘 높은 곳에서도 아버지 하나님께 스스로 조연의 자리에 있음을 기쁨으로 여기셨다. 아버지의 뜻을 아셨기에 영광의 자리를 버리고 이 땅 낮고 천한 곳에 오셨다. 예수는 자기 백성이 주연 인생을 살게 하기 위해 스스로 조연을 택하셨다.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한 것이며 자신의 목숨을 자기 백성을 위한 대속의 제물로 바치기 위함이라고 명명백백하게 밝히셨다. 예수는 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 마지막 순간에조차 그 분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먹어야 주연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설파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살을 찢어주셨고 남김없이 피를 흘려주셨다. 예수는 진정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인생을 주연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위대한 명품 조연의 길을 택하신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이런 예수의 정신을 가장 잘 이어받은 사람은 바나바가 아닐까. 그는 교회 공동체가 주연이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사도들의 발 앞에 바쳤다. 그가 파송 받은 안디옥 교회는 그의 훌륭한 조연 덕에 큰 무리가 교회로 몰려들었다. 그가 세계 기독교사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포악하게 예수 믿는 이들을 잡아 죽이다가 변화 받은 사도 바울을 모두가 꺼려하고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를 교회 공동체로 끌어들인 것이며, 선교지에서 바울의 사역에 대한 열정과 능력을 지켜보다가 스스로 선교의 주도권을 그에게 넘겨준 일이다. 이런 바나바의 양보로 인해 1세기 세계 선교는 편만하게 달성되어 목표 이상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 2차로 선교여행을 떠나기 전에 바나바의 조카 마가 요한의 문제로 바울과 갈라서게 된 것도 그의 조카를 위한 조연 인생을 선택한 결과였다. 누가 옳았느냐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바나바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은 후에 바울 서신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바나바는 예수를 본받아 명품 조연 인생을 일관되게 산 사람이다. 목회자 역시 배우로 말하면 조연 배우가 아닐까. 목회자가 설교하고, 예배를 인도하고, 어디 가서든지 대표기도를 하는 현실에서 조연 배우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스피릿에 있어서는 조연의 길을 택할 수 있다. 목회자가 주연 배우의 스피릿으로 살면 교인들은 저절로 조연이나 영화 화면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엑스트라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오늘 교회가 어지러운 것은 조연으로 남아야 할 목회자들이 주연을 자처하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교인들의 인생을 빛나는 주연으로 탄생시키기로 작정하고 목회자 스스로 조연을 자처하면 교회 안에서 위대한 주연 배우들이 탄생한다. 열심히 섬기는 교인들을 칭찬해주는 일에 민감하면 그들은 더욱 열심히 섬긴다. 좀 뒤처지는 교인들을 격려하면 그들도 힘을 내어 사명의 자리를 찾아간다. 병들어 고생하는 교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면 그 힘으로 병상을 박차고 일어난다. 시험이 든 교인이라도 원망하지 않고 위해서 기도해주면 교회의 일꾼이 된다. 무엇보다 목회자가 조연의 길을 택할 때 가장 큰 축복은 수많은 조연의 길을 택하는 교인들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3). danielkmi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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