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는 흔히 ‘테플론 후보(Teflon candidate)’로 불린다. 다른 후보 같았으면 무너지고도 남을 스캔들이나 실수, 오판, 막말에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 후보를 일컫는 용어다. 그러나 그런 그가 백악관으로 향하려고 올라탄 ‘기차’에 이상이 생겼다. 탈선한 건 아니지만 엔진이 꺼져가는 듯하다. 어떤 막말 논란에도 끄떡없어 보이던 트럼프 후보도 전사한 미군 장교의 무슬림계 부모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뒤엔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받았다고, ‘아이비타임스’는 자세하게 보도한다(Why The Khan Feud Is Disastrous For Trump's Campaign).]

무슬림인 후마윤 칸 미 육군 대위는 2004년 이라크에 파병된 동안 자살폭탄테러에 의해 전사했다. 그의 부모는 지난 7월 28일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단에 올라 무슬림의 미국 입국금지 정책을 내세웠던 트럼프 후보를 비판했다. 특히 변호사인 아버지 키즈르 칸은 트럼프 후보를 두고 “당신이 미국 헌법을 읽어본 적이 있긴 하냐? 기꺼이 내 책을 빌려주겠다”며 웃옷 주머니에서 포켓용 미국 헌법전을 꺼내 흔들었다. “당신은 아무 것도, 누구도 희생하지 않았다.” 그러자 트럼프 후보는 자신도 많은 희생을 했다고 반박하며 사업 성공을 그 예로 들었다. 또 그는 칸 대위의 어머니 가잘라가 남편과 달리 민주당 전당대회 무대 위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여성의 복종을 강요하는 이슬람 전통 때문이라고 비하했다(가잘라는 그 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발언하지 않은 것은 당시 아들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 일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만이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격렬한 비판을 받으면서, 트럼프 캠프와 공화당 지도부의 갈등이 한층 더 깊어졌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8월 1일 트럼프 캠프는 공화당 전국위원회와 캠프 사이의 중개 역할을 해온 선임고문 에드 브룩오버를 해고했다. 캠프 측은 해고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브룩오버와의 관계를 정리했으며, 그가 그동안 캠프에 기여한 많은 공로와 노력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지원을 바란다”고 발표했다. 칸 가족을 둘러싼 논란으로 우익마저 공황에 빠졌다. 리처드 해너 공화당 하원의원(뉴욕주 3선)은 현직 공화당 의원으로는 최초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지를 공식 표명했다. 그는 특히 전사자 자녀를 둔 가족을 트럼프 후보가 비하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 해너 의원은 뉴욕 주 시라큐스의 포스트스탠다드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 후보의 발언 장면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났다”며 “그의 발언이 너무 냉담해서 충격 받았다”고 말했다. 공화당 경선 주자였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핵심 참모였던 전략가 샐리 브래드쇼도 지난 8월 1일 “트럼프 후보는 여성혐오자이며 편견에 사로잡힌 자아도취자”라며 공화당을 탈당하겠다고 선언했다.

급기야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 낙마’에 대비한 대책을 논의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ABC 방송은 당의 주요 인사들이 트럼프 후보의 기이한 행동에 좌절하고 혼란스러워한다면서 그가 중도에 낙마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할지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후보에겐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일부 공화당 인사만이 문제가 아니다. 워싱턴포스트지에 따르면, 미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의 가족을 비하하는 발언은 아무리 곱게 봐줘도 선을 넘은 듯하다(칸 대위는 사망한 뒤 전투 사상자에게 수여되는 퍼플 하트 훈장과 전우들을 구하는 등 뛰어난 공을 세운 군인에게 주는 동성무공훈장을 모두 받았다).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인 프랭크 런츠는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 후보가 다른 정치인을 공격하는 것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으며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멋진 하이킥으로 대리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평범한 사람을 공격하는 건 싫어하며 중단하기를 바란다.” 런츠는 지난 7월 말 오하이오 주 컬럼버스에서 트럼프 후보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미 전역의 각종 단체들도 칸 가족에 대한 트럼프 후보의 발언을 비판했다. 최대 규모의 재향군인 단체인 해외전쟁 참전군인회(VFW)는 트럼프 후보의 무슬림 미군 전사자의 부모를 모욕한 발언이 “도를 넘었다”고 규탄했다.

브라이언 더피 VFW 회장은 “대선을 치르는 해든 아니든 VFW는 전사자의 가족 구성원을 질책하는 누구의 발언도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단 선을 넘으면 어떤 명문장가도 표현을 바로잡을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주제들이 분명 있다. 본인의 목숨을 국가에 바치는 것은 최대의 희생이다.” 전사자 가족들도 반발했다. 미군 전사자 11명의 유족들은 재향군인 유권자 단체 ‘보트 베츠’(VoteVets.org)를 통해 트럼프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트럼프 후보는 사과는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도 그에 대한 민심의 기반이 드러났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던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본선 레이스로 막 접어든 대선 판세가 크게 요동치는 상황이다.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클린턴 후보가 확실한 상승세를 타는 반면, 트럼프 후보는 잇따른 헛발질에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 상승곡선을 그렸던 지지율이 크게 꺾였다.

폭스 뉴스가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여론조사기관 앤더슨 로빈스 리서치, 쇼 앤드 컴퍼니 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등록 유권자 1022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클린턴 후보의 지지율이 49%로 트럼프 후보(39%)보다 10%포인트 우세했다. 양당 전당대회 이전인 6월 26-28일 실시된 폭스 뉴스의 조사에서 클린턴 후보가 44%로 트럼프 후보(38%)를 6%포인트 앞선 데서 격차를 더 벌린 것이다.

트럼프 후보가 무슬림계 미군 전사자 부모와 벌인 논쟁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77%가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69%는 그가 전사자 가족에게 한 비판은 “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표현했다. 공화당원 중에서도 트럼프 후보의 대응이 “도를 넘었다”고 응답한 사람이 41%로, “한도 안”에 있다고 한 응답자(40%)보다 약간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8월 1-2일 등록 유권자 2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후보가 칸 부부를 비판한 이후 그를 지지할 가능성이 더 적어졌다는 응답자가 34%로 나타났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