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성(性)을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으로 표기한 여권이 발급될 길이 열렸다.
AP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미국 연방법원 덴버지원의 브룩 잭슨 판사는 20일 콜로라도 주에 거주하는 퇴역 해군 데이너 짐이 미국 국무부를 상대로 '중성 표기 여권을 발급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잭슨 판사는 미국 국무부에 중성 여권을 발급해 주라면서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해결되지 않는다면 중성 여권 발급 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법원 명령이 나기 전에 중성으로 표기된 여권을 발급해 주라는 판결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호하게 태어난 짐은 남자로 자랐지만, 이후에 남성도 여성도 아닌 '간성'(intersex)으로 확인됐다. 정부 측 변호인은 이번 소송과 관련해 "운전면허증이나 출생신고서는 두 개의 성만 제공하고 있으므로 여권에서 제3의 성을 인정하는 것은 담당 공무원들의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한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잭슨 판사는 "많은 것이 변해가고 있다"면서 "성 정체성이 과거처럼 명확하지 않은 새로운 시대에 정부가 맞춰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2010년부터는 의사의 확인서가 있으면 여권에 있는 성을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남성이나 여성 이외의 표기는 인정하지 않아 왔다. 이번에 잭슨 판사의 판결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이 중성 표기를 요구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호주와 네팔, 뉴질랜드는 성을 표기하지 않은 여권을 발급하고 있으며 이들 나라의 국민도 미국에 입국할 수 있다. 다만 미국 입국 비자를 신청해야 할 경우에는 성별을 말하도록 하고 있다. 오리건 주에서는 지난달에 자신의 성을 '제3의 성'으로 표기하도록 허용하는 첫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고 생각한 성전환 여성의 청원을 법원이 받아들여 'non-binary'로 표기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