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맥 선교사
인생(人生)은 참 어렵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도, 이런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 땅에 존재했던 사람의 수만큼 나름의 사연들이 인생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아무도 날 대신해 해줄 수 없다” 캐롤 버넷의 말이다. 아파트에서 기르던 5개월 된 강아지를 얻어 시골에 데려갔다. 그동안 어찌 자랐는지 모르나 목에 줄을 채우는 순간부터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개를 준 분의 말이었다. 오전 10시쯤 개를 차에 싣고 일을 보기 위해 주차장에 몇 시간을 기다리게 했음에도 개(강아지?)는 낑~ 하는 소리는 고사하고 일체 반응하지 않았다. 차에서 기다린 다섯 시간 동안의 유일한 변화는 바닥에서 의자 위로 올라앉은 것뿐이었다. 오후 6시 경 시골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게 해도 움직이지 않아 안아서 내려야했고 목줄을 당겨도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그냥 질질 끌려왔다. 낯이 설고 무서워 그러는 것으로 짐작하여 만져주고 부드럽게 말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에 있던 개집을 청소하고 새 담요를 깔아주며 먹을 것을 챙겨줘도 그저 눈만 껌벅였다.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조차 않고 먹을 것을 입에 대줘도 거부했다. 그러다 목줄이 풀리자 쏜살같이 달아나 낯선 주변을 맴돌 뿐 사람의 가까이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눈치를 보며 사료를 먹고 물도 마셨다. 잡는 것을 포기하고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문을 조금 열어놓고 한 밤을 보냈다. 염려가 되어 문을 열면 나 잡아봐라 하는 듯 밖으로 내뺐다. 아무리 낯설다 해도 먹이를 주는 이에게 꼬리 한 번 흔들지 않고 짖지도 않는 것을 보면서 불통의 무서움이 느껴졌다. 밖에 나가 식사를 하고 돌아오다 울타리 구석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다. 잡을까 말까 망설이다 올가미를 가지고 잡아 다시 목에 줄을 채우니 역시 꼼짝도 하지 않고 무반응을 보인다. 옆에 먹을 것을 주고 물그릇을 놔줘도 일체 반응이 없다. 짐승이지만 그 무반응이 섬칫했다. 여우하고는 살아도 소하고는 못산다는 말이 왜 떠오르는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이상한(?)한 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개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내 견생(犬生)이잖아!’ 그러든 말든 제 생이라는데 더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성질 급한 사람을 만나 발에 채이거나 몽둥이에 맞아 죽어도 제 생이라면 할 말이 없게 된다. 요즘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사고도 그렇다. 공중화장실의 묻지마 살인, 등산로에서 묻지마 살인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가 되었으며 잘나가던 특별한 인생들의 추락도 내 인생이라고 목청을 높인다면 도진개진이다.
에덴동산에서 독처하는 아담을 보시고 그를 도울 배필로 여자를 만들어주신 하나님에게 이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기뻐하던 사람의 모습에는 ‘내 인생’이라는 이기(利己)는 없었다. 요즘도 흔히 ‘내 맘대로’라는 말을 듣기는 하지만 이는 이성적인 말이 아니다. 사람이 진정 사회적인 존재라면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논리는 무인도에 가서나 가능할 것이다.
‘내 인생이잖아!’ 생각해볼 것이 참 많은 말이다. 하나님을 믿느니 차라리 내 주먹을 믿겠다고 말하는 천방지축도 있다. 사람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른다. 숨을 쉬지 않으면 왜 죽는지도 모르며 입으로 먹는 음식이 어떻게 소화되고 에너지가 되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내 손안에 있다고 허세를 떨다가도 몸살감기에 솜처럼 가라앉는 것이 사람이다. 오죽하면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겠냐만 풀어놓고 따져보면 사람처럼 무능한 존재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내 인생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없다는 점이다.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생명은 하나님의 불어넣으셨다. 죽으면 몸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주인이신 하나님께 가야만 한다. 세계인구 74억 중의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이 세상에선 특권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특권은 없다. 왕이라는 권세도, 스타라는 명예도, 재벌이라는 부도 다 무용지물일 뿐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이 ‘죄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신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이 된다. 그때 그 심판의 자리에서 ‘내 인생’이라며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 인생이잖아!’ 그렇다. 그 인생이다. 그가 어찌되든 그 인생이다. 다만 그 인생의 책임도 그 자신이 져야만 한다. 영원한 지옥! 억지를 부리다 가기에는 너무 두렵고 무서운 곳이다. hanmac@cmi153.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