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을 제국주의 침략의 앞잡이로 왜곡해서는 안된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4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고려대 조광 명예교수는 이 같이 강조했다.
‘병인박해·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순교’를 주제로 강연한 조 교수는 “사건이 발생한 1886년 당시 기독교 신앙 자체는 조선의 전통 가치와 문화에 대한 사상적 침략으로 간주됐고, 조선의 조정은 병인박해의 결과로 발생한 병인양요를 조선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침략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조선과 통상을 요구하며 접근했던 제너럴셔먼호는 당시 지배층 입장에서 조선의 물화를 탐해 조선을 경제적으로 침략하려 한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며 “이 가운데 조선에 그리스도교를 전하고자 했던 선교사들 다수가 순교했다”고 말했다.
토마스 선교사에 대해서는 “그리스교적 신앙과 이를 통한 조선인에 대한 사랑의 결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고 평가했다. 영국 웨일스 출신인 토마스 선교사는 27세 때인 1866년 조선 선교를 위해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평양 대동강가에 올라왔으나, 외세를 배격하던 군인들에의 셔먼호는 불타고 동승했던 토마스는 목이 잘려 순교했다. 당시 그는 최후를 맞으며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존 롯 선교사는 감동을 받아 조선 복음화에 헌신했으며 1882년 최초의 우리말 성경으로 누가복음을 출간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마스를 칼로 쳐 죽인 박춘권은 존 로스가 전해준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었다.
조 교수는 “당시 죽음을 당했던 신·구교 선교사들은 제국주의 침략 혹은 자본주의 침략의 앞잡이로 지탄받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선교사들은 제국주의 침략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신앙과 조선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순교라는 교회사적 사건을 한국사와 무관하거나 오히려 해를 입히려던 침략과 연계된 행동으로 규정지어서는 안된다”며 “선교를 국가주의적 해석에 입각해 제국주의 침략이나 자본주의 팽창으로 해석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