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들은 트럼프의 거친 모습과 매력에서 연대의식을 갖는다. 트럼프의 정책 지식이 놀라울 정도로 얄팍한 건 사실이지만 그의 포퓰리스트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매력은 그의 세율에 관한 생각이나 지출 제안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최소한 본능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다. 아울러 그런 매력은 유럽의 우익 운동이 한 세기 이상 사용해온 선전술의 핵심이기도 하다. 미국의 성난 유권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트럼프의 능력도 유럽의 떠오르는 우익당 지도자들과 비슷하다. 리스 교수는 20세기 초 유럽의 우편향적 포퓰리스트들이 “이전에 소외됐거나 기존 정치에서 아무런 역할을 못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줬다”고 설명했다. 21세기 들어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같은 유럽의 극우정당도 비슷한 계층을 공략한다. 또 트럼프처럼 유럽의 현대 우익 지도자들도 “남성 유권자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고 이트웰 교수가 말했다.
이트웰 교수는 “60%가 넘는 남성의 지지를 받는다. 그들 중 다수는 실직을 두려워하는 육체노동자거나 사회적 변화로 기술을 잃고 일자리를 위협 받는 근로자”라고 말했다. 트럼프 자신도 투표를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을 민주주의 정치로 끌어들이겠다고 자주 말한다.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미국 퀴니피악 대학이 지난 4월 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심화되는 소외 수준을 잘 보여준다. 미국 전체 유권자의 62%가 ‘신념과 가치가 공격받는다’고 말한 반면 트럼프 지지자 중 그렇게 생각하는 비율은 91%나 됐다. 또 트럼프 지지자의 90%는 ‘공직자들이 나 같은 사람의 생각에는 관심 없다’고 말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같은 독재자도 비슷한 계층을 선동했다. 리스 교수는 “대중을 경멸하는 경향을 보이는 지적 엘리트의 지배에 분개하는 계층”이라고 설명했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흔히 자신의 반(反)엘리트적 면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교양 없고 저속한 언어를 구사한다. 트럼프가 유세 중 사용하는 언어는 초등학교 3-4학년 수준이라고 언론의 놀림을 받지만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그런 말을 사용하는 정치인은 예상 외로 많다. 이트웰 교수는 “포퓰리스트는 공략하려는 계층에 보통사람의 일상적인 언어로 얘기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상류층의 학구적인 문장 대신 짧고 선동적이며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을 사용하면 자신이 기득권이 아니라는 뜻을 전하기 쉽다.” 이것이 트럼프가 가진 매력의 기본 요소다. 포퓰리스트는 말하는 방식만 단순화하는 게 아니다. 리스 교수는 자신이 연구하는 우익 정권의 공통 주제가 ‘모든 정치 담론의 단순화’라고 설명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전부 다 기초적인 이분법으로 단순화시킨다. 물론 ‘우리’ 대 ‘그들’의 구도가 바탕이다.”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그들’을 공격 표적으로 삼으면 자신의 정체성이 확실해진다. 이트웰 교수는 “그러면서 자신을 다른 것으로 포장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에겐 ‘그들’이 이민자, 특히 멕시코 출신과 무슬림이다. 나치 독일에선 ‘그들’이 유대인이었다. 리스 교수는 그런 사고방식을 이렇게 요약했다. “복잡한 말은 필요 없다. 뭣이 문제인지 우린 안다. 해결책도 안다. 필요한 것은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트럼프와 2016년 유럽의 우익 지도자들 사이엔 한 가지 확연한 차이가 있다. 트럼프의 막대한 재산이다. 트럼프는 억만장자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지만 유럽의 포퓰리스트들은 자신이 서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트웰 교수는 “영국의 우익 독립당 대표 나이젤 파라지는 선술집에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고 예를 들었다. 계급이 주된 구분 기준이고 재정긴축의 충격이 상당한 유럽에선 그런 소속감의 표시가 매우 중요하다. 반면 미국인은 자본주의에 유럽인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그들은 트럼프가 ‘거부’라는 사실에 큰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트럼프의 행동은 또 다른 대륙인 아프리카의 정치인들과 닮았다. 미국 코미디센트럴 채널의 정치풍자 프로그램 데일리쇼 진행자 트레버 노아는 지난해 10월 트럼프의 일부 선언이 리비아의 카다피나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같은 아프리카 독재자의 막말과 상당히 닮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남아공 출신인 노아 진행자는 “기본적으로 트럼프는 아프리카 대통령으로 제격”이라고 농담했다. 조지타운 대학에서 아프리카 정치를 가르치는 요나탄 모스 교수는 “아프리카에서 대통령이나 의원에 출마하는 사람은 트럼프의 이미지 같은 부유함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서민, 특히 지금까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집단을 돌볼 수 있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개념에 뿌리를 둔 발상이다.”
물론 정치 시스템에 대한 만연한 환멸감이 없다면 이런 메시지는 힘을 얻지 못한다. 지금 미국 정치가 보이는 정체 현상을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겪은 경제 붕괴에 비교하는 건 지나칠지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이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기존 질서의 부패와 정치인들의 흥정과 허접한 타협으로 무너지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제2의 히틀러나 무솔리니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각본이 비슷하다고 해서 결과도 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유권자에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는 트럼프가 해외에서 ‘제조된’ 메시지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굉장한 아이러니다. 트럼프의 양복과 넥타이가 바로 그렇다. 지난 3월 CNN 방송은 트럼프의 양복과 넥타이는 중국산, 셔츠는 방글라데시산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