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안보 위한 문화전쟁 전세계로 확산

영적 안보 위한 문화전쟁 전세계로 확산

미국 국내 정치의 이른바 “문화 전쟁” 코드가 이제는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다음 달 열리는 HIV/에이즈 퇴치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유엔 내에서 불거진 논쟁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집트를 필두로 한 57개 이슬람 국가들의 단체인 이슬람회의기구(the 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 OIC)가 11개 동성애자/트랜스젠더 단체의 회의 참가를 반대하고 나섰고, 이에 미국, EU, 캐나다가 크게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사만다 파워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트랜스젠더의 HIV 감염률이 일반인에 비해 49배나 높은 상황에서, 이들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전지구적 에이즈 퇴치 노력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사무총장에게 호소 서한을 쓰기도 했다.

따라서 ‘이코노미스트’는 소위 ‘영적 안보’논리로 자국의 전통적 가치와 문화를 동성결혼이나 LGBT 문화로부터 지켜내려는 지구촌의 움직임을 보도한다(At the UN, new global fault-lines over moral matters are emerging.)

어떻게 보면, 동성결혼에 대한 이슬람권과 러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UN에서 한 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영국의 외교와 동성애 연계 정책을 저지하려는 몸짓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 후, 동성애를 핍박하는 국가들에 ‘인권’이기에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비판을 많이 했다.

특히 2013년, NBC방송의 ‘투나잇쇼’에서 “인종, 지역이나 성 혹은 성적 취향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것은 국가를 초월한 기본 도덕의 위반”이라며, 러시아의 동성애 반대법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에서 문제 법안이 통과된 것은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다”며 러시아 정부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게이, 레즈비언 등 성적 소수자들을 핍박하려는 국가들을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동성애를 탄압하고 있는 우간다 등 아프리카 일부 국가의 사례를 거론했다.

영국은 일찍이 2012년,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0월 말 호주 퍼스에서 열린 영연방 정상회의에서 대외원조를 성 소수자 보호와 연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의 이 같은 조치는 성 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중대한 진전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전통적인 가치와 충돌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반발도 만만찮다. 캐머런 영국 총리의 발표 후 우간다, 나이지리아, 짐바브웨 등에서 공개적인 비판이 잇따랐다.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은 지난달 말 동성애는 아프리카 및 기독교 가치와 상충하는 것으로, 캐머런 총리의 발언은 “악마적인 것”이라고 비난했다고, 텔레그래프는 당시 국제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결국 2012년부처 불거진 영국과 미국 주도의 친동성애코드 외교 정책에 맞서, 사회적 보수에 해당하는 국가들의 연합, 즉 OIC와 러시아를 필두로 중국이 기회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가세하며 촉발된 것이다. 이들 연합은 작년에도 반기문 사무총장이 유엔 내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자 이를 뒤집으려 시도한 바 있다. 이에 더해 5월 19일이 유엔이 정한 “호모포비아 반대일”이었기 때문에 긴장이 더욱 고조되었다.

서구에서 LGBT 권리를 외교 무대의 주요 아젠다로 앞세움에 따라, 보수주의 국가들의 연합도 더욱 세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파워 대사는 LGBT 문제를 각별히 여겨, 이를 소재로 다룬 뮤지컬에 동료 유엔 대사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테러에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이슬람 국가들과 함께 동성 결혼과 LGBT 권리를 둘러싼 세계적 움직임에 반대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두 세력이 자유주의적 물결에 맞선다는 이해가 일치하자, “전통적” 가치와 문화를 앞세우는 외교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러시아가 국가 안보를 논함에 있어서도 “영적 안보(spiritual security)”를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종교/신념의 안보(faith security)”를 앞세우는 이집트 정부의 레토릭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러시아와 이집트가 국제 무대에서 취하는 이러한 전략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신념을 가혹하게 대하는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한 인권단체의 발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러시아에서 종교의 자유를 실천한 죄로 기소된 사람은 119명에 이릅니다. 2014년 23명에서 급증한 수치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부터 파룬궁까지 다양한 종교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대부분은 벌금형을 받았지만, 단기간 구금된 사람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