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비가 복을 채워주나이다

이른 비가 복을 채워주나이다

이진희 목사 (달라스 웨슬리연합감리교회 담임)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시84:6). 시인은 이른 비가 내릴 때쯤 되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다. 아마 장막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름 내내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샘이 다 말라 있었을 것이다. 성전을 향해서 올라가는 순례자들은 목이 타는데, 마실 물을 구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샘이 터지게 해주신다. 그 물을 마시고 힘과 생기를 얻고 다시 힘차게 예루살렘을 향해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것이 시편84편의 배경이다.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스라엘에는 샘이 많지 않다. 샘이 있는 마을은 샘골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샘이 귀했다. 지금도 지명에 에인(ein)이라는 단어가 붙은 곳들이 있는데(예를 들면 엔게디), 그 말은 그곳에 샘이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에 샘이 많지 않은 이유는 지반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비가 와도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다 흘러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샘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마시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빗물을 웅덩이에 모아놓았다가 그 물을 마신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렘2:13). 예수님이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신 것도 바로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샘들이 터지게 하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순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와 축복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이른 비가 복을 채워주나이다

이스라엘의 농사는 11월에 비가 오면서 시작된다. 이때 비가 오면 파종을 한다. 그래서 이때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부른다. 2월에 내리는 비는 늦은 비라고 부른다. 이때 내리는 비는 곡식을 여물게 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이른 비는 가을비이고 늦은 비는 봄비인 셈이다. 개역한글에서는 “이른 비가 은택을 입힌다”라고 되어 있고 개역개정에는 “이른 비가 복을 채워주나이다”라고 되어 있다. 의미를 알 것 같으면서도 뭔가 확실하지 않다. 알쏭달쏭하다. 원문에는 복을 뜻하는 berakah가 사용되었다. 직역을 하면 “이른 비가 복을(또는 복으로) 채우리라”가 된다. 그런데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원문에 있는 복은 온데간데 없다. 그리고 뜬금없이 비가 내려서 웅덩이(샘물)을 채운다고 번역되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는 새번역처럼 번역되어 있다. 이 번역은 의미가 분명하다. 의미를 살려서 의역을 했기 때문이다.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시인은 이렇게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고 “이른 비가 은택을 입힌다”, “비가 복을 채워준다”, “비가 복을 내려준다”와 같은 식으로 표현했던 것일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비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가장 큰 복이다. 신명기 28장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비를 내려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 반대로 불순종하게 되면 하늘 문이 놋문처럼 되어 비가 내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엘리야 시대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던 것도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오후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배를 들으면 우리는 우산을 갖고 나간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비를 피하기 위해서는 뛰는 사람도 별로 볼 수 없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축복의 비를 내려주시는데 그것을 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비가 곧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이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겔34:26).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시지 않아서 샘이 말라버리면 그것은 저주이다.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셔서 샘이 넘쳐나면 그것은 축복이다. 그러기 때문에 시인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셔서 웅덩이(샘)에 물이 가득 차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웅덩이(샘)를 축복으로 채워주셨다고 표현한 것이다. jinhlee1004@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