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서 목사 (엘크그로브 가스펠교회)
저는 지금까지 선교사로, 목회자로, 병원 채플린으로 지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수많은 가족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 가운데 상실의 고통보다 더 힘든 아픔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직접 당하는 고통보다 사랑하는 자녀와 배우자, 부모와 형제, 절친한 친구와 믿고 의지했던 동료를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아픔이며, 그 상실감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됩니다. 특히나 어린 자녀를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떠나보내야만 한 부모의 고통은 그 어떤 말이나 보상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아픔의 충격은 크고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주위에서 흔히들 말하기를 하루빨리 그 고통을 떨쳐버리고 잊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른 일에 바쁘게 몰두해서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우리 몸에서 느끼는 작은 통증도 아무 이유 없이 생기지 않듯이 마음의 통증 역시 단순히 피하고 부인해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환자들은 통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진통제를 더 많이 투여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인지 완치 불가능한 입원 환자 치료에 있어서 환자의 통증 완화가 대부분 치료팀의 목표로 채택되고 있습니다. 의학 전문가들은 통증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환자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인체는 외부에서 병균이나 불순물이 침입하거나, 신체 부위가 상처를 입어 출혈을 하든지 하면, 즉각적인 통증이 시작되며 뇌에 경고 시그널을 보냅니다. 또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홀몬과 효소들이 분비되고 면역체계가 급속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즉, 통증은 치료에 있어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상실의 충격적인 사건을 체험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고통을 선물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이 고통은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있는 그대로 돌아보게 합니다. 상실의 고통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신의 회초리인지도 모릅니다. C. S. 루이스는 “하나님의 메가폰으로서 고통이 혹독한 도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통은 반항하는 영혼의 요새 안에 진실의 깃발을 꽂는다”고 하였고, “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인간의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 고통의 첫 번째 효력이며,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는 말에서 ‘모든 것’ 안에 하나님이 포함되어있지 않을 때 그야말로 무서운 말이 되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성 어거스틴 역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고자 하시지만 우리 손이 꽉 차있기 때문에 주지 못하신다고 탄식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죽음도 없고, 상실의 고통도 없다면,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찾고, 그 뿐께 매달리며, 그 분의 바른 뜻대로 살려고 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모든 행복을 다 소유하고 있는 자처럼 교만하게 굴면서 ‘나에게 하나님은 필요없다’라고 외칠 것입니다.
우리는 상실의 고통과 통증이 우리를 일부러 힘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징벌적 수단이 아니라, 상처받고 애통해하는 영혼들을 치료하고 더 강하게 회복시키시면서 하나님께로의 영적인 회귀를 간절히 소원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도구란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통증은 무조건 제거해야할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통증을 느끼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긴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위로자는 이 고독한 여행에서 말없이 동행하는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고통의 깊은 웅덩이 속으로 내려가 그 옆에 같이 앉아서 말도 들어주고, 눈물도 닦아 주며 어깨도 빌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섣불리 충고나 해결책을 제시하며 사다리까지 놓고 웅덩이에서 끌어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스스로 상실감을 극복하고 걸어서 나오지 않으면 언제든지 더 깊은 웅덩이로 다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실감은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처방하신 가장 좋은 치유책인 것입니다. 상실감을 잘 천천히 극복했을 때 오히려 그 영혼은 더 강해지고 더 온전한 인격체로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이 감기를 앓으면서 면역도 강해지고 튼튼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상실은 그럴 때 인생의 의미와 목적과 소망을 새롭게 하며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tdspar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