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후

엘리후

이승현 박사 (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 총장)

욥기에서 나오는 엘리후는 신비적인 인물이다. 2장에는 욥의 세 친구가 소개되는데 엘리후의 이름은 언급되고 있지 않다. 그는 32장에서야 비로소 소개되고 있으며 다른 세 친구가 더 이상 욥에게 대답을 할 수 없게 되자 답답하고 분노한 마음에 입을 연다. 욥과 친구들의 논쟁에서 욥은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을 주장하였고 이것은 엘리후로 하여금 욥뿐만 아니라 세 친구들의 무능력함에 대한 노여움을 사게 한다. 엘리후의 연설은 욥의 마지막 증언과 하나님의 현현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답변이자 하나님의 응답의 프롤로그 역할을 하고 있다.

엘리후는 지혜가 나이나 연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입김인 인간의 영에 있다고 말한다(32:8). 그리고 욥의 친구들이 더 이상 욥에게 아무런 대답을 주지 못하자 엘리후는 성령에 이끌린 선지자들처럼 그의 영이 참지 못하고 말을 해야만 안식을 얻게 됨을 느낀다. 그러면서 욥의 고통에 대한 질문은 결국 인간의 지혜와 논쟁이 아닌 하나님의 영만이 답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그는 다른 욥의 친구들과 달리 욥의 편에 서서 욥의 의로움을 변호하기를 원한다(33:32). 엘리후는 하나님의 자리에서 욥의 범죄함을 지적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자기 자신도 욥과 같이 흙으로부터 왔음을 고백한다(33:6). 38장에서 폭풍우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비해 엘리후는 잔잔하게 부는 하나님의 입김을 통해 생기를 받은 인간으로서 자신이 욥에게 위협적이고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아님을 알린다(33:7).

엘리후가 욥이 한 말들 중에서 첫 번째로 반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33:14). 하나님께서는 꿈에 나오는 환상을 통해서 인간의 귀를 열어 가르치시고 침대에 누었을 때 다가오는 고통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죽음과 멸망으로부터 돌아서게 한다고 설명한다. 또 하늘에 많은 천사 중 한 명이 인간의 중개자로 그 인간의 의로움을 주장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리고 그의 기도가 응답을 받아서 그 인간이 의로움을 되찾을 때도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대적하고 정죄하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인간을 멸망에서 구원하시기를 원하고 인간의 의로움을 회복시키시기를 원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깨달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무지 때문임을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로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비위를 맞추시는 분이 아니라고 증거한다(34:33).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왜곡하지 않으시고 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신다. 가난한 자나 부한 자에게 공평하게 행하시는 권력자에게 부정을 행했다고 욕할 수 없듯이 인간의 생명을 주장하는 하나님을 비난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무 유익이 없다는 욥의 주장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욥의 모습은 시편 1편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의인의 모습과 상반되며 오히려 악인의 길을 걷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불의한 자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엘리후 눈에 비치는 욥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무신론자 또는 불가지론자이다. 자신이 주장하는 의를 인정받지 못하고 거부당한 욥은 더 이상 죄와 의의 대한 의미을 상실하고 의의 삶에 대한 노력이 득없 (no profit)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죄 또한 욥에게 더 이상 두려움을 가져오지 않게 된다. 이러한 무관심(apathy)과 회의가 욥을 덮고 있음을 본 엘리후는 그에게 이러한 반문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너의 범죄와 반역이 하나님께 무슨 영향을 미치며 네가 의롭다 하여도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며 또 무엇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겠는냐?”(35:6-7) 욥의 세 친구들이 응보적인 신앙에 매달려 인간의 의는 하나님의 축복을 낳고 인간의 죄는 심판과 처벌을 낳는다는 주장을 버리지 않는 반면에 엘리후는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자유의지와 역사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신학적 견해는 엘리후로 하여금 죄와 고난의 연결고리를 끊으며 욥의 고난의 새로운 이해를 돕게 한다. 엘리후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빚도 지지 않았으며 우리의 행위에 대해 어떠한 의무도 갖고 계시지 않지만 결코 의인을 저버리시지 않는 분이라는 것이다(36:7).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그 분이 공의를 억누르시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신앙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세 친구들이 욥의 과거의 삶에 집착해서 그 삶이 어떻게 현재의 고난을 낳게 됬는가에 대한 논쟁을 하였다면 엘리후는 고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응답해야하는가에 더 초점을 맞춘다. 고난을 당했을 때 우리가 비관하고, 분노와 교만에 빠지는 것을 조심해야 하며, 하나님을 조소하는 자로 변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우리의 분노와 교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나 자신과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해를 끼치다고 말한다(35:8, 12).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환란을 통해 환란에 있는 자를 구하시고 고난을 통해서 그들의 귀를 여시며, 역경에서 인도해 내셔서 억압이 없고 넓은 곳으로 인도해 내시는 분이시다고 이야기한다(36:15-16). 우리가 고통과 불의의 문제에 너무 집착해 시야가 좁아지고 독선과 정죄에 빠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처해있는 고난의 장소에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희망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시는 것도 그 골짜기를 지나가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넓고 푸른 초장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역경에 역경을 더하셔서라도 우리를 움직이게 하시고 깨달게 하신다는 역설적인 주장이다. 따라서 엘리후는 고난이 갖고 있는 회복과 치유의 능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불교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고행을 통한 자기 구원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일부러 고난을 찾아 나서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고난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고 하나님께로 끝난다. 우리가 원하지 않은 역경이 왔을 때 우리는 이 고난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우리를 도우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으로 볼 수 있다. 고난이 우리의 문제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고난은 하나님의 의의 문제이며 그 분의 공의는 영원히 변함이 없음을 엘리후는 욥과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욥기에서 엘리후는 유일하게 회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 욥의 마음을 움직여 위로와 함께 회개를 촉구하는 인물로서 엘리후는 나에게 성령님과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우리의 도움(para¿klhtoß)이 되시는 성령님은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가 약할 때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중보해 주시지만 또 우리 마음에 죄와 의, 그리고 심판을 깨달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요16:7). 오늘도 고통 받는 이들에게 우리를 위로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기도하며 기다린다. james.lee@itsla.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