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으시는 하나님

숨으시는 하나님

이승현 박사 (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 총장)

이사야서 45장 15절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신을 숨기시는 분이시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다 창조하신 분이시고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공의를 나타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얼마든지 어둠가운데 숨어 계실 수 있다는 것이다. 해가 구름가운데 있을 때 그 빛을 가리우듯이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얼굴을 가리실 수 있는 분이라는 신학적 주장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위반되는 것처럼 들린다.

숨겨짐(hidden)이 아닌 숨음(hiding)은 능동적인 행위이다. 행위자의 의도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자유의지가운데 당신의 숨기심을 선택하신 것이다. 어릴 때 많이 놀았던 숨박꼭질에서 술래가 찾지 못하게 자신을 감추려는 노력을 생각할 때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피조물로부터 자신을 숨기려 하실까 질문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부재는 단순한 신학적 논쟁의 주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한 이에게 하나님의 숨으심은 절망, 분노, 공포, 아픔, 실망, 배신감등을 가져온다. 어린 아이가 부모의 얼굴을 오랫동안 보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들과 비슷하다. 나에게는 세 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내 아내나 내가 출장을 갈 때 불러주는 노래가 있다. 그 애가 자주 보는 Daniel Tiger’s Neighborhood라는 TV 유아프로그램에서 배운 단순한 노래인데 “Grown-ups come back(어른들은 다시 돌아와)”라는 가사이다. 어른들에게는 너무나도 기본적이고 다 아는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부모 그리고 집이 자기 세계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엄마 또는 아빠의 얼굴을 하루 넘게 보지 못하는 것은 큰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아빠, 엄마가 자신의 세계에서 사라져 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꼭 다시 돌아온다는 안도의 말을 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른들은 잠시 자리를 비워도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에 대한 신뢰를 준다. 또 어른의 부재는 자신들의 세계를 혼자서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용기와 모험심을 심어줄 것이다. 고난은 욥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부재의 문제였다. 욥기 13장24절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매 자기를 적으로 여기신다고 한탄하였다. 하나님의 부재를 자신에 대한 적대적인 행동으로 욥은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신도 하나님 얼굴 앞에서 자신을 감추고 있다고 말한다(13:20).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은 축복, 은혜와 은총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 축복의 말을 모세에게 가르쳐 주시는데 “야훼께서 그의 얼굴을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야훼께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5-26)라고 돼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얼굴을 감추실 때는 모든 생물들이 떨고 두려워한다고 시편 104편 저자는 말한다. 피조물들이 창조주를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더라 하여도 그들의 생명과 삶은 이를 지탱해 주시는 하나님 없이는 불가능함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재 또는 얼굴을 감추심은 종종 인간들의 죄의 결과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과 우상들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감추실 것이라고 신명기는 경고하고 있다(31:18). 이사야 선지자도 우상을 섬기는 이들이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감추실 때 부끄러움을 당하고 수치를 경험할 것이라고 예언한다(45:16). 반면에 시편 44편 저자는 자신들의 수치와 환란이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하나님과의 언약도 저버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왔음을 주장한다(17, 18절). 인간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으면 분명히 다 아셨을 텐데, 자신들의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해 매일 죽임을 당하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들과 같은 취급을 당한다고 하나님께 억울함을 고한다(22절).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서 깊은 잠에서 깨어나실 것을 촉구한다. 홀로코스트에서 생존자로 “흑야”(Night)이라는 자서전을 쓴 엘리 위젤은 이 책에서 수많은 유태인들이 아무 잘못 없이 희생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과연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축복할 수 있을까 의심한다. 그리고 한 어린 아이가 나치 저항단체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나무에 목매달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하나님이 과연 어디 계시는가?”하고 질문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그는 스스로 이렇게 답을 한다. “하나님은 저 나무에 목매달려 계시다…” 엘리 위젤에게 목 매달린 소년은 이러한 잔혹한 비극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죽음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도 죽어버렸음을 상징했다.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육백만의 유태인들이 강제수용소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져버린 것이 어찌 그들의 죄라고 말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어떻게 이 비극 앞에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마틴 루터는 하이델베르그 논쟁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가운데에서 숨어계신다고 주장했다. 영광의 신학은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이라 하지만 십자가의 신학은 진실을 말한다하였다. 그리고 십자가의 신학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혜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혜, 곧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계시다고 이해했다. 심오한 진리이다. 인간의 성취, 영광, 힘, 자랑, 지혜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찾으려 할 때 우리의 노력은 헛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졌던 인간적인 확신은 하나님의 부재를 통해 무너지게 된다.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부재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십자가, 하나님의 죽음에서만이 하나님의 진정한 임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는 마지막 숨을 거두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이 분이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라고 고백한 백부장의 회심 (막15:39)을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이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자신을 구원해보라고 놀렸지만 백부장은 아무 저항 없이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서 숨어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하지 않고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된다. 십자가의 신학은 많은 불안과 염려가운데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준다. 유럽,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 기독교의 쇠퇴를 염려하는 이 시기에 어쩌면 “하나님의 숨으심”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신학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위기가운데, 환란가운데 드러나는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기도하며 기대한다. james.lee@itsla.edu